그때와 지금의 결심

2020년 vs 2023년

by 스타티스

2020년의 글을 다시 읽게 되었다.


(2020년의 글)

고속도로 (정해놓은 길)


나 있는 그대로보다, 타인의 시선으로 평가했다. 지난해 겨울이었다. 출장 다녀온 남편이 저녁을 사준다고 일찍 퇴근했다. 오후 6시 30분 정도였다. 평소 밤 10시 정도 퇴근에 비하면 정말 빠른 시간이었다. 예전엔 일이 많이 없어 종종 그랬는데 당연한 줄 알았다. 물론 그땐 경제적으로 많이 쫓기는 느낌이었다. 바빠지고 보니, 그 시절 남편이 그렇게 해준 건 고마운 일이었었다.

놀이방이 있는 감자탕집으로 갔다. 아이들은 놀고, 우리는 감자탕을 주문해서 먹었다. 뼈에 고기가 많이 붙어 있는 걸 나에게 계속 넘겨주었다. 고마웠다. 서울 출장 간일 꼬여서 늦게 끝나 찜질방에서 세 시간 자고 내려와서 또 일했다고 한다. 눈 흰자에 붉은 실핏줄이 서 있었다. 그동안 나만 생각하느라 그를 보지 못했나 보다. 기대를 지우고 공간을 만드니 그의 배려가 느껴진다.


둘째는 그 무렵 배변혼련 중이었다. 회사 복직한다고 엄격하게 배변훈련을 한 첫째와 달리 둘째는 자연스럽게 기저귀와 분리되리라 생각하고 지켜보았다. 어린이집에서는 관점이 달랐다. 그 해 가기 전에 가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어느 순간 유아용 변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불안해했다. 옷에 혹시 실수할까 봐, 화장실에 하루 종일 앉아있었다. 아침을 화장실 변기 위에서 먹었다. 잠들 시간이 되었는데도 내려오지 않으려고 했다. 아이도 울었고, 나도 울었다. 둘이 손잡고 화장실에 있었다. 아이는 변기에 앉아 있고, 나는 그 옆에 앉아 있었다. 어린이집을 쉬게 되었다. 한 달 정도 그렇게 보냈다. 억지로 아이에게 내려오라고 소리 지르거나, 야단친다고 될 거 같지 않았다. 그대로 지켜보았다. 아이 옆에 있어주었다. 시간이 흐르니, 아이는 내려왔다. 2년이 지났다. 아이는 혼자서 화장실에 잘 갔다. 화장실에서 한참 안 나올 때면, 세면대 청소를 하기도 한다. 밤중에도 화장실 가고 싶을 때는 일어나서 잘 다녀온다.


2년 전 그때 아이일로 그때 미뤄두었던 내 일이 있었다. 방송통신대 재입학 건이었다. 2012년도 청소년교육과에 합격하고 곧 휴학했다. 장기간 복학하지 않았다. 올해 재입학 신청 후 허가를 받았다. 학교를 다시 다닐까 말까 고민했다. 첫 등록 기간을 놓치고 마지막 날 결국 등록했다. 오리엔테이션이 있다는 건 등록금 내러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알게 되었다. 일요일도 서울 출장이 있는 남편이라 말할까 말까 고민했다. 남편이 흔쾌히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고마웠다. 2시부터 행사 시작이었다. 오전에 친정어머니께서 큰아이가 보고 싶다고 하셔서 친정에 아이를 내려주고, 다시 고속도로를 달려 학교로 갔다. 딱 2시 정각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가득했다. 1학년 신입생들 나처럼 편입생들이 섞여 있었다. 젊은 교수님의 인사말이 잊고 있었던 학생 기분을 떠올리게 했다.


2시에 시작해서 4시에 끝나는 일정이었다. 스터디 결정까지 1시간 더 걸렸다. 옆자리 앉아있던 언니와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니 마음이 두근두근했다. 예전엔 이러한 자리가 부담스럽고 긴장되었었다. 그날은 아니었다. 뭔가 여유가 생겼나 보다. 서울에서 온 3학년 튜터 선생님 말씀이 마음속으로 쑥 들어왔다.


“여러분은 여러 가지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 며느리, 아내, 엄마, 그리고 이제 학생도 추가되었지요. 그중 가장 돌보야 할 건 자기 자신입니다. 오늘 집으로 돌아가시면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스스로에게 수고했다고 꼭 칭찬해 주세요.”


그분은 세 아이 엄마였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며 회사도 다니는 분이셨다. 고등학교 졸업하시고 방송대로 국문학과 졸업하고 창소년교육과 편입해서 다시 공부하셨다고 한다. 지금은 상담자이자 튜터로 활동 증이 신 분이셨다. 한 분이 관리하는 학생이 200명이 넘는다고.


열정적인 삶을 사는 이가 많았다. 편입생들은 다른 교실에 모여 한 사람 한 사람 자기소개를 했다. 입시학원을 12년 이상 운영하셨던 분, 98학번이었는데 경제적인 사정으로 학교 그만두고 2교대로 일하시면서 18학번으로 편입하신 분(그분은 소개하시며 울먹이셨다), 청소년 아이들을 키우며 불같은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고민인 분,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인데 사춘기 대비해서 편입하신 40대 중반 아버지 등 마흔 넘어서 자신의 삶을 되짚어 보고 다시 시작하기 위한 분들이 꽤 계셨다.


20대에 학교에 다닐 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학점이 우선순위였다. 함께 하기보단 혼자 공부했다. 옆에 사람들보다 잘해야 했다. 그들은 함께 가는 이가 아니라 경쟁 상대였다. 사람들이 두려웠다. 나와 상대 사이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사람과 사람 사이 따뜻함을 느낄 수 없었다.


이번에는 주변과 함께 하려고 한다. 물론 학점도 중요하다. 하지만 함께도 중요하다.

2018년 2월, 텔레비전에서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매스스타트 이승훈 금메달 따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매스스타트 경기를 처음 봤다. 쇼트트랙처럼 시종일관 긴장하며 하는 경기가 아니었다. 준결승전에서 결승 진출을 위해 최대한 힘을 아끼는 느낌이었다. 16바퀴 도는데 4,8,12 바퀴에서 1,2,3위에게 5,3,1점을 부여하고 마지막 바퀴에서 1,2,3위에게 60,40,20점을 준다. 점수를 합산한다. 준결승에서 결승에 올라가려면 순위권 안에만 들면 된다. 메달을 따려면 마지막 바퀴에서 1위를 해야 한다. 16바퀴니 힘배분도 중요했다. 빨리 달렸다가 천천히 달리고 여유가 있다가 다시 힘을 내서 전력질주하고 재미있는 경기였다. 준결승과 달리 결승 마지막 바퀴에서는 보는 나도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여유로우면서도 전략적인 경기였다.


편입 오리엔테이션을 다녀오니 마치 매스스타트 경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튜터 선생님이 말했다.

“4년 만에 꼭 졸업해야 한다고 처음부터 달리던 분들은 1학기 만에 휴학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10년 다닌다고 생각하고 여유롭게 하면 4년 만에 졸업합니다. 여유를 잊지 마세요. 그리고 스스로를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십시오.”


그 후로 2년이 지났다. 마지막 학기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다. 편입 후 첫 학기 기말고사 날이 생각났다. 하나밖에 없었다.

‘잘해야지.’

네 글자가 무거웠다. 매일매일 공부하는데, 부족한 것 같았다. 가족들에게 짜증 냈다. 예민했다. 눈앞에 결승점은 좋은 성적이었다. 청소년교육에 대한 공부 하면서 과거 내 모습이 보였다. 공부 외에 다른 걸 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한눈팔지 않고 고속도로를 달려서 성공이라는 결승점에 닿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시금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다. 튜터 선생님이 그날 왜 그렇게 이야기했는지.


뛰어가면 숨이 차다. 천천히 가면 주변에 꽃도 나무도 보인다. 사람도 보인다. 시간이 더 걸리는 건 아니었다. 길을 잘못 들면 뛰어가도 그 자리인 경우도 있다.


어디를 갈지 선택하는 건 나 자신이다.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는 나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



(2023년의 글)

앞으로 가야 할 길


그 후로 3년이 지났다.

한걸음 한걸음 걸어서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박사과정은 안 가야지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후기입학을 목표로 준비하려 하고 있다.


어제 석사 지도교수님께 메일을 보냈다. 우리 지도교수님은 인격적으로도 내가 따라가지 못할 만큼 성숙하신 분일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정말 좋은 분이다. 하지만 나의 관심분야와 교수님의 주 연구분야에 차이가 있다. 그 부분이 고민이었다. 어제 교육분석에서 진로에 대해 다루었는데, 이 부분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얻었다.


다음 주에 교수님을 찾아뵙기로 했다.


'이제 더는 공부는 아니다.' 싶었는데 사람마음이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쉽게 변하는 법이다.


이 글은

소중한 나 자신을 데리고

다시금 한걸음 한걸음 걸어보려고 결심한 날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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