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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같이함께

달빛 한 잔

과거 인연들이 보내준 차 한잔을 앞에 두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by 스타티스
밤 10시 30분 시작



이 시간에 시작하는 모임에 참여한 적 있었을까. 학교에 다니는 중이다. 어제는 대면 수업이 밤 10시까지 있었다. "마침"이 밤 10시가 될 수 있지만, "시작"이 밤 10시 30분은 처음이다.


낮에 딸아이가 물었다. "엄마,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랑 놀다가 늦게 온 적 있어?"

10대에 새벽 1시 귀가는 학원 때문이었다. 학원 차에서 내려 집에 가면 새벽 1시.

20대에는 막차시간 놓치면 고생이었다. 그때 우리 집은 택시 기사분들이 승차거부를 많이 했던 동네였다. 행여나 막차를 놓쳐서 집에 가야 한다면 밤중에 택시에서 내려서 30분 넘게 걸어야 했다. 고생보다는 안전함을 택했었다. 밤 10시 30분에 시작하는 모임에 간 적이 없었다.


zoom 라이브 티타임과 차 한 잔


오늘은 차 한잔 하는 시간이었다. 각자 노트북 앞에서 모였다. 새로운 얼굴들을 만났다. zoom을 켜기 전에 물을 끓였다. 진짜 차 한잔을 마시고 싶었다. 얼마 전에 도착한 오설록 티 컬렉션 뚜껑을 열었다. 연한 주황색 상자에 담긴 '오설록 스위트 부케향 티'가 끌렸다. 뚜껑을 여는 순간 달콤한 향기가 코로 쑥 들어왔다. 100일 글쓰기를 했던 멤버들이 선물로 보내준 차이다. 얼마 전 나는 몇 년을 함께했던 글쓰기 멤버 방을 나왔다. 글로 만나서 오프라인 모임으로 이어졌던 모임이었다. 대부분 수도권에 살고 계셨고, 나는 지방에 있다. 파주에서 있었던 오프모임에 참석하기도 했지만, 앞으로 코로나 시대에는 힘들 거 같았다. 오프모임에서 만날 때 사용하려고 회비를 모으는 중이었다. 나는 회비를 돌려받았다. 그리고 그간 만남의 선물로 오 셜록 티 센트를 선물 받았다.

보온컵에 뜨거운 물을 붓고, 티백을 담갔다. 향기는 달콤한데 차를 입에 머금으니 쓴 녹차맛이 났다. 몇 년 동안 이어진 글쓰기 모임에 멤버들이 떠올랐다. 글과 사람을 함께 만난다는 건, 묘한 의미가 있었다. 놀이터에서 아이 친구들 엄마들과 친해지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다. 여러 사람의 글 쓰는 자아를 만났었다. 나 또한 오프라인 만남에서는 꺼내놓지 못한 무거운 이야기들을 가끔 툭, 툭, 놓았었다. 그리고 다른 분들의 삶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 시간 동안 나도 모르던 나를 만났고, 놀라기도 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친해지는 것, 삶을 나누는 것에 대해서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그리고 이토록 깔끔하게 마무리한 건 아마도 처음일 것이다. 녹차 한 모금처럼.


이 세트에 차를 다 마시는 동안에, 그분들이 생각날 듯하다.


과거 인연들이 보내준 차 한잔을 앞에 두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인연


사람의 수명이 영원하지 않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 수명도 계속 이어지지 않는다. 마침표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 언젠가 끝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온라인 수업에서 끝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수강생들이 함께 할 수 있게 오픈 채팅방이 있다. 그리고 zoom에서 모임도 한다. 내 입장에서는 신기했다. 어떠한 마음이 이렇게 행동으로 이어지게 할까. 1시간 예정되었던 모임이 30분을 훌쩍 넘기며 마무리되었다. 마지막에 작가님이 말씀하셨다.


"글을 쓸 수 있게끔 도와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시작할 수 있게끔 아니라 이어갈 수 있게."


덕분에 나도 시작했다. 브런치 개설 후 5년 동안 하나도 쓰지 못했다. 스테르담님 덕분에, 브런치에 글쓰기를 시작했다. 채우는 글쓰기가 아니라 내어놓는 글쓰기라고 이야기해주셔서, 오늘도 쓰고 있다.


"나에게서 시작된 선한 영향력이 또 다른 사람에게, 그분이 또 다른 사람에 전달할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듣는 순간,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쓰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잔잔한 수면에 물결이 퍼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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