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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두 시. 술을 마시고 돌아가는 길. 막차는 이미 끝났으므로 같은 방향인 선배와 택시를 탔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여학우' 들에게 말 섞기를 수줍어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더 이상 여'학우'는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것 같아 이런저런 말을 걸었다. '마가 뜨는' 시간을 불편해하는 습성이 모두 사라지지 않은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오랫동안 보지 못한 동안 그가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한 마음이 더 있었다.
"그때 oo이랑 같이 유럽 갔었잖아. 그때, 스페인 사는 ㅁㅁ누나도 만나고 그랬지."
"아 그렇구나, 전 유럽 아직 안 가봤어요. 선배는 유럽 어디가 좋았어요?"
"오스트리아가 좋았어"
"어떤 점이요?"
"음.. ㅁㅁ누나가 밤에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고 있었거든? 그걸 보고 있던 뒷모습이 좋았어."
오스트리아의 어떤 성이나 거리 같은 걸 얘기할 줄 알았지.
타지로 떠나 사는, 아주 오랜만에 조우한 친한 누나의 영화를 보던 뒷모습이 좋았다는 그의 말이 또렷하게 귀에 박혀왔다. 택시는 흔들리고, 앞유리로 비쳐 보이는 풍경은 말줄임표같은 가로등만 남긴 채 모두 까만 밤인데, 그것이 스크린이라도 된 것처럼 ㅁㅁ누나의 둥그런 등을 나에게 비추어 보였다. 그리고 그 등을 가만히 쳐다보는 이 선배의 옆얼굴을 비추어 보였다. 얼굴이 꽤 타이트하게 줌인이 되어 있는데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는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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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의 얘기가 불러온 몇 가지 장면들을 바라보다, 기억을 헤쳐 내게 남은 타인의 뒷모습을 찾아보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뒷모습으로 남아있을까 궁금해졌다.
아니, 뒷모습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어떤 뒷모습이건 상관없을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뭐라 말을 꺼낼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그에게로 저벅저벅 걸어가서 두 손을 꼭 쥐어보고 싶다.
2018. 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