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 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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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배드민턴을 잘 친다.
배드민턴을 좋아하는 어머니와 일찍부터 함께 쳤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는 직장에 다니셔서 늘 많이 바쁘고 피곤하셨다. 그래서 어머니와 어디를 놀러 다니거나,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닌 기억은 잘 없다. 하지만 어머니와 배드민턴을 쳤던 기억이 많다. 주로 저녁 8시 30분쯤 아파트 앞 한적한 길 위의 플레이였다. 그렇네. 이제와 돌이켜보니 그것은 어머니 당신의 최선이었던 거다.
아, 생각지도 못하게 찡해져 버린다. 양파 속 눈물 유발성분인 황화알릴이 어머니라는 이름 안에도 가득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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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다. 체육 실기 시험이 배드민턴이었다. 두 사람이 짝이 되어 셔틀콕을 100번 왕복시키면 만점이었다. 마침 나는 친한 친구와 짝이 되었다. 각자 열심히 연습해 오기로 했다. 나는 배드민턴을 정식으로 배워본 적이 없어 서브나 스트로크 같은 것이 모두 그냥 내 맘대로 내 식대로였지만 그래도 나는 자신이 있었고, 그만큼 맹렬하게 연습해갔다. 우리 반 시험일정이 가장 빨라 어느덧 시험날이 되었다. 우리는 왕복 100개를 해냈다.
왕복 100개를 하고 나면 팔이 아플 것 같지만 사실은 목이 아프다. 공중에서 왔다 갔다 하는 셔틀콕을 계속 응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친구와 나는 해냈다는 것이 너무나 기뻐서 신나게 웃었다. 안 그래도 목이 아픈데, 웃느라 계속 꺾이는 바람에 끝내는 뒷목을 잡고 웃어야 했지만 그래도 너무 좋았다.
하지만 그다음 주, 만점의 기준이 왕복 50개로 하향 조정되었다. 다른 반에서 시험을 쳐 보니, 아이들의 평균 스코어가 왕복 20개가 채 못 되었기 때문이었다. 조금 억울한 기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은 기분이 훨씬 컸다. 왕복 100개를 해낸 건 우리뿐인 데다가, 왕복 50개를 해낸 팀도 딱 하나뿐이어서 우리가 독보적인 전교 1등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100이라는 숫자는 어쩐지 아주 꽉 찬 기분이어서 그 자체로 흡족하기도 했다.
그 뒤로도 나는 자주 배드민턴을 쳤다. 간혹 호흡이 잘 맞는 파트너를 만나면 큰 움직임 없이도 한참을 칠 수 있었다. 때문에 지루해질 쯤이면 왼손만으로 치거나, 양손을 번갈아 바꿔가면서 치거나, 자리를 고정하여 움직이지 않고 치거나, 아예 자리에 앉아 치기도 했다. 최근으로 가까워 올 수록 칠 일이 잘 없어 거의 치지 않았지만, 집 근처 호수를 산책할 때면 문득 배드민턴이 치고 싶어 진다.
나는 이렇게 배드민턴을 잘 친다. 근데 다른 배드민턴은 참 못 친다는 생각이 오늘 번뜩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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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못 치네.'
연휴가 되기 하루 전날이었다. 오래된 뇌관이 건드려질랑 말랑 하는 듯, 나는 많은 것을 견딜 수 없는 상태였다. 모든 가족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나의 괴로움을 내비쳤고, 그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내심 책임을 전가하거나 원망했다. 감기를 핑계로 아주 늦게 자고 아주 늦게 일어났으며, 말을 잘 섞지 않았고 눈도 잘 마주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힘들 때마다 내가 했던 행동의 패턴이었다. 오랫동안 가지고 왔던 습관이었다. 좋아하지 않는 습관이었다. 하지만 습관인 줄은 알지만 그걸 뒤집을 만큼 의지가 나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단단히 박아두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꽤 변한 구석이 있었고, 나름대로 노력해주었다. 아니 그것은 아마 그들의 최선이었을 것이다. 김여사는 조심스레 내게 말했다.
"늦게까지 자는 걸 보니 네가 우울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이렇게 섬세한 관찰과 그에 따른 추측을 조심스럽게 전달하는 화법이란 어머니에게 잘 없던 것이었다.
나는
"맞아. 난 좀 우울해" 라고 대답했다.
아버지도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아버지가 지난번에 말을 함부로 해서 많이 미안하다. 네가 많이 속상했다는 걸 몰랐어."
나는
"아, 네, 아버지 아니에요." 라고 대답했다.
혈육도 멈칫거리다 말을 꺼냈다.
"동생아 괜찮아 너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나는
"그래 뭐..." 라고 대답했다.
어머니가 보낸 셔틀콕에 나는 원망을 묻혀 넘겼다.
도라지차를 실은 아버지의 셔틀콕은 쳐다보지 않고 괜찮다는 영혼 없는 말로 되돌려 보냈다.
끼니를 챙겨주며 던진 혈육의 셔틀콕은. 받아먹고 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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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틀콕의 머리가 라켓의 탱탱한 망에 부딪쳐 내는 소리, 그리고 셔틀콕이 방향을 바꾸어 깃대가 하늘을 가르며 상대를 향해 날아가는 소리, 그리고 그 소리들이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내 편에서 상대의 편으로, 상대의 편에서 내 편으로 오고 가는 그 경쾌함이 배드민턴의 매력이다.
그래서 이번 연휴 내 배드민턴은 망했다. 너무나 구리다. 셔틀콕은 한 번도 제대로 된 소리를 내며 왕복하지 못했다. 구리다. 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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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설거지를 했다.
아버지가 늘 새벽마다 하시는 설거지라서 그전에 미리 해두려고, 밤 11시에 설거지를 했다. 그릇에 따라 찬물과 더운물을 적절히 섞어가며 천천히 깨끗하게 닦았다. 싱크대의 물기까지 닦아내고 나자 가스레인지 상판의 얼룩이 보였다. 함께 잘 닦아냈다.
마침 어머니가 잠시 부엌으로 나왔다. 나는
"설거지 내가 했어. 가스레인지도 다 닦았어. 밥솥에 밥이 없는데 지금 해둬야 해?"
라고 말하며 어머니의 날개뼈에 가만히 손을 올렸다. 김여사는
"설거지를 깨끗하게 했네, 밥은 남은 게 좀 있으니 안 해도 돼." 라고 답했다.
"그렇구나, 알았어."
아무렇지 않은 듯 답했지만, 조금 멋쩍어 얼른 방으로 들어왔다.
근데 지금 방금 어디서 핑,퐁, 비슷한 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데.
2017. 10. 7. 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