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캠핑을 갔다. 대학교 때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한 오랜만의 캠핑이었다.
우리는 오후 3시쯤 캠핑장에 모여, 오후 4시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저녁 9시쯤 됐을 땐 얼큰한 기분까지 지나가 노곤해졌다. 해가 떠나고 나자, 캠핑장의 푸릇한 잔디들도 어둠 속에 담겨 검게 보였다. 밝은 것은 나무 식탁 언저리에 서 있는 하얀 전등뿐이어서, 손바닥만 한 나방부터 개미보다 작아 보이는 날파리들까지 그 전등을 향해 바삐 머리를 박고 있었다. 눈이 흐리거나 운전에 실패한 날벌레들은 우리의 머리나 어깨에 앉거나 급기야는 귓구멍 속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우리는 우리와 우리의 음식들을 지키기 위해 두 손을 바쁘게 내저었다. 수선스러운 사이, 나의 동기 하나가 조용히 내 옆자리에 앉았다.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영 기운이 없다.
-
"응, 왔어?"
라는 말 말곤 해줄 만한 것이 떠오르지 않아 그저 손으로 그녀의 무릎을 두어 번 스윽슥 쓰다듬다, 무릎 위에 올려진 그녀의 손과, 그 양 손으로 가만히 쥐어진 작고 파란 고무공을 발견했다.
"강아지 장난감 같다."
"응, 맞아."
조용한 대답을 듣고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 더욱 확실해져서,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술을 마시기 시작하던 오후 4시였다.
날이 밝았고, 해는 눈부셨고, 그녀는 시들시들했다.
해를 등지고 있던 나는, 내 앞의 그녀가 시들시들한 게 태양 때문인가 싶어 물었다.
"어디 아파?"
"아니.. 실은.."
오랫동안 함께 지낸 반려견이 며칠 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이야기였다.
말을 끝낸 그녀는 잘 마시지 못하는 술을 조용히 꼬박꼬박 마셨다. 그러다 이내 숙소에 들어가 쉬었다.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좀 쉬고 나서 다시 조용히 나와 또 가만히 술을 마시는 듯하더니, 얇은 긴팔 점퍼 주머니에서 그 작은 고무공을 꺼내 만지작거리는 것이었다.
--
-
그 작은 강아지를 기억한다.
그녀를 처음 만나 어색함 속에서 멈짓멈짓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았을 때, 강아지의 이름은 그녀가 들뜬 목소리로 말하던 몇 개의 이름 중 하나였다. 그것은 그 후 10여 년이 넘도록, 그녀를 만날 때마다 항상 안부를 주고받았던 이름 중 하나였다. 가끔은 그녀의 핸드폰을 통해, 작은 강아지가 뛰놀거나, 뭐라고 말을 하는 모습들을 보기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마지막 안부를 듣게 되었다.
-
따뜻하고 보드라운 것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푸른 고무공.
아무리 만지작 거린들 하얗고 복실복실한 그 아이만 할까. 나에게 달려와 살을 부비고 알 수 없는 말들로 칭얼거리고, 또 완전히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로 자신을 위로해주었을 그 친구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면. 만질 수 없는 세계로 건너가버렸다고 생각하면. 나는 견딜 수가 없을 것 같다.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은 시간과 공간을 견디고 있는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나 행동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주먹보다 작은 그 고무공이 그녀를 잘 껴안아 주었으면 좋겠다.
고무공이 복실복실한 그 아이의 어떤 것도 대신해줄 수는 없을 테지만 그녀의 마음이 친구와 그녀 사이의 여백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만이라도, 그녀에게 아주 조금의 기댈 구석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어디로 멀리 튀어가 버리지 말고, 쫀득한 탄성을 유지한 채로 그렇게 튼튼히 또 조용히 그녀의 곁에 있어주면 좋겠다.
그리고 곰순이, 곰순이도.
그곳에서 잘 지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