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나의 향수_後

by 릴리슈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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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바람이 한 번씩 부는

하얀 가로등 아래에도 모기는 없는

간간히 풀벌레가 소리를 내는 호숫가 벤치에 깊게 앉아서

벤치에 걸터앉아 두 무릎에 팔꿈치를 고아 대답을 생각하는 너의 두툼한 등을 보고 싶다.

쫑긋거릴 것 같은 귀의 귓바퀴를 뒤에서 바라보고 싶다.


바람에 섞여 오는 너의 향수 냄새가 내 어깨에 배면 좋겠다.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다, 내 블라우스에 네 향수 냄새와 내 향수 냄새가 뒤섞여 있는 것을 알아채고 싶다.

옷걸이에 단정히 걸어둔 블라우스를 내 방 창가에 걸어두고 싶다.

창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나풀거리는 블라우스를 보며

네 향이 나는지 아니면 너와 섞인 내 향이 나는지 코를 찡긋거리다, 이내 얕은 잠에, 곧 깊은 잠에 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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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그랬다.

나는 호숫가 벤치에 다리를 접어 올려 아주 깊게 기대어 앉았고

너는 벤치에 반쯤 걸터앉아 허리를 구부려 두 무릎에 팔꿈치를 고아 질문을 떠올리거나 대답을 찾았다.


내가 너를 향해 고개를 돌리면 너의 등이, 짧게 깎은 머리칼이, 뾰족한 뒷귓바퀴가 보였다.

너의 등이 두툼해서 자꾸만 기댈 뻔 하다, 요정처럼 뾰족한 귀가 정말 쫑긋거릴 것만 같아서, 그것을 살피는데에 주의를 기울이느라 나는 이야기를 몇 번쯤 놓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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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이지만 꽤 늦은 밤의 호숫가라, 세네 점 정도는 바람이 불었다.

바람은 너의 편에서 나의 편으로 불어왔다. 나는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하릴없이 너의 향수 냄새를 맡게 되니까, 그리고 곧 네 향기가 내 어깨에 배일 테니까. 바람에다 대고 불공평하지 않냐고 작게 투덜거렸다.

"지금 무슨 말 했어?" 너는 내게 물었다.

나는 "으응_ 아니?" 나는 너 말고 내 앞으로 지나가는 바람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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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를 떠나 집에 돌아왔다.

블라우스를 벗어내니, 집에 오는 동안 잊고 있었던 향기가 난다.

왼쪽 어깨에는 너의 향수가, 오른쪽 팔에서는 나의 향수 향기가 나는데, 블라우스란 본디 유라시아 대륙만큼 큰 것은 아니니 너와 나의 향이 몇 조각 천과 그 천을 만들어 낸 수많은 실들과 함께 얼기어져 있었다.

우리가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 머물렀다는 것, 우리가 그 향내들처럼 얼기어져 있었다는 것을 향기를 벗고서 알게 되었다.


얼기어진 향기가 거기 블라우스에 아직 그렇게 머물고 있어, 나는 블라우스를 세탁통에 넣는 대신 하얗고 얇은 세탁소 옷걸이에 걸었다. 그런 블라우스를 조금 지켜보고 싶어 창문 근처에 걸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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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누우니 창문이 바로 보이고, 하얀 블라우스가 여름밤의 조각 바람에 조그맣게 흔들리는 것이 보인다.

옅은 바람이어서, 나 누운 자리까지는 그 향이 오지를 못하나, 잠들기 전 한 번쯤 더 맡아보고 싶어 코를 찡긋거렸다. 너의 향일까, 나의 향일까, 둘이 섞이어진 향일까, 무엇이 내게 닿을까, 하고 코와 눈을 블라우스에 고정해두었지만 이내 곧 나는 그 자그마한 조각 바람에 얕고 깊은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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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니 볕이 연하고 부드럽다.

잠든 새 내게 뭔가 닿았다 간 것 같은데, 무엇이었을까? 향이었을까? 그렇담 어느 향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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