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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슈슈 Aug 11. 2018

볼터치를 해야하는데 큰일이다.

이거 다 네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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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쯤, 화장하는 법을 잠깐 배웠다.

화장을 너무 안하고 다녔던 터라, 기본적인 것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다. 

수업은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하여 지금도 그때의 배움에 따라 매일 아침 화장을 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얼굴에 생기를 만들어 주는 볼터치(블러셔) 하는 법이다. 

피부 속 깊은 곳에서부터 발그레한 홍조가 피어오르는 듯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궁극의 터치!!인데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블러셔 종류에 알맞은 도구를 선택한다.

    나는 주로 가루형을 사용하니 통통한 블러셔용 붓을 선택한다.

2. 블러셔 위에 붓을 둥글게 돌려가며 충분히 가루를 묻힌다.

3. 가루를 묻힌 붓은 한번 톡톡 털어, 과하게 묻은 가루들을 가볍게 털어낸다.

4. 거울 속 나를 향해 이빨을 내보이며 환한 위협적인 미소를 지어보인다.

5. 광대뼈 위에 동그랗게 생성된 볼살(=애플존)을 중심점으로 정한다.

6. 중심점에 도장을 찍듯 수직으로 붓을 세워 15-20회쯤 톡톡 두드린다.

7. 이후 중심점에서 바깥으로 1미리씩 원을 확장해간다는 느낌으로 붓을 톡톡 두드려 나간다.

8. 볼 전반을 가볍게 코팅한다는 느낌으로 동글게 원을 그리며 두드려 준다.


이렇게 하면 물감이 번진 듯, 경계없는 그라데이션이 완성된다.

사실 다들 알고 있을 기본적인 것이라 생각한다만은 화장을 1도 몰랐던 내게는 매직 매직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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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중심점이다.

웃었을 때 동그랗게 올라오는 부분만을 정확히 찍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화장의 분위기에 따라 그 애플존의 양 옆으로 중심점을 설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해지면 곤란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한다.


* 중심점을_ 애플존을 기준으로 광대뼈 바깥쪽 및 아래쪽으로 잡을 경우 섹시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그러나 잘못하면 한층 나이가 들거나 얼굴이 커보일 수 있다.

* 중심점을_ 애플존을 기준으로 광대뼈 안쪽, 즉 눈동자와 수직으로 일직선이 되는 지점 또는 그 위쪽으로 설정할 경우, 귀여운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잘못하면 아침부터 술 취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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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참 얼굴에 홍조 좀 넣는데도 이렇게 인체공학적 이해가 필요하다. 

허나 이렇게라도 내게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면_ 한다. 볼터치. 아침에.

하여 졸린 아침에도 눈을 부릅뜨고 거울을 보며 억지로 이빨을 보인다. 거울 속 나와는 눈을 맞추지 않고, 나의 광대만을 잽싸게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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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필이면, 눈동자와 수직으로 일직선이 되는 나의 볼, 그 지점에 네가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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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요즘 나는 아침마다 헷갈린다.

어디가 나의 중심점인지 헷갈린다. 거울 속 나를 보고 웃고 있는데도 자꾸만 신경은 광대가 아니라 네가 다녀간 그 지점에 머무른다. 그리고는 스물스물 웃느라 볼이 몽땅 올라와버린다. 광대를 찾아낼 수가 없다. 헷갈린다.



-

그러니까

내가 블러셔를 잘못 찍어 바르면 다 네 탓이다. 그래서 아침까지 술이 안 깬 사람처럼 보인다면 다 네 탓이다. 그래서 혹여 귀여워 보인다면야 천만 다행이지만, 어쨌거나 그런데도 그것도 네 탓이다. 웃느라 블러셔 바르는 것을 깜빡해도 네 탓이다. 블러셔 바르는 것을 깜빡했는데도 볼이 붉다면 그건 진짜 네 탓이다.

그냥 다 네 탓이다. 네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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