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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슈슈 Aug 11. 2018

푸딩이나 한잔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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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육과 어쩌다가 스타벅스에 왔다.

카페인 민감족인 둘은 커피 메뉴판 앞을 마지못해 서성거리다 디저트와 병 음료 쇼케이스 앞으로 이동했다. 그마저도 마뜩해하지 않아하는 혈육에게 나는 스타벅스 푸딩을 추천했다.

“꽤 괜찮아, 초코가 달지만 괜찮은데.. 어, 다 팔렸네?”

밀크 맛은 느끼하니, 후르츠 푸딩은 어떻겠냐고 권했다. 혈육이 어쩐 일로 오케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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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앉아 푸딩을 뜯었다.

혈육은 푸딩 높이보다 세배는 긴 숟갈을 들고 잠깐 당혹감을 비추더니만 회를 뜨듯 한 숟갈을 걷어냈다. 그리고는 입으로 가져가 오물오물.


혈육의 미간이 순식간에 환해진다.

미뢰를 통해 전해진 맛은 분명 대뇌로 먼저 전달이 되었을 텐데, 혹시 맛만은 혀에서 미간으로 직진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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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란 게 뭐지?”

“커스터드 크림?”

“그래 맞아 이거. 난 이게 참 좋더라구.”


“이.. 하얀 게 뭐지?”

“코코넛?”

“그치그치. 여기에 든 건 참 맛있다. 도넛에 뿌리는 코코넛 가루는 찔깃 찔깃하고 맛도 없더만.”


우리는 스피드 퀴즈를 하듯 재료의 이름을 맞추어 나갔다. 혈육은

“거 참 맛 좋다”

하고 씩 웃었다. 나도 따라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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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빵 속 필링인 커스터드 크림이나, 도넛에 종종 뿌려져 있는 코코넛, 슈퍼 진열장에 가득히 쌓여있는 통조림 파인애플. 아는 맛, 흔한 맛을 가진 이 친구들이 그저 모였을 뿐이다. 그런데 꽤 흡족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푸딩이 되었다.


“왜지?”

“음.. 밸런스 때문이 아닐까?”

“그렇네, 밸런스.”


커스터드 크림 속 계란과 크림과 우유가 만드는 균형, 그 커스터드 크림과 코코넛과 파인애플 농축액과 마스카포네 치즈가 만드는 균형과 조화는 우리를 씩,하고 웃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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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 균형이라고. 균형 말이지..

워라밸 워라밸하는데, 그럼 내 삶은, 내 푸딩은 어쩌고 있나 생각해보게 된다.

근육과 지방의 함유량은 어떤지, 정신은 신선한지 아니면 조금 맛이 가고 있는지, 마음은 충분히 몰랑몰랑한지 살펴본다. 내 삶 속 가족의 함유량은 몇 퍼센트인지, 일의 함유량은? 크고 작은 꿈들의 비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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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을 내기는커녕 저 항목들을 다 늘어놓기도 전에, 혈육은 후르츠 푸딩을 모두 먹어치웠다.

소주잔보다 겨우 조금 더 클 뿐인 푸딩이니까, 놀랄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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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삶도 딱 저만한 크기의 푸딩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러니 저러니 말할 시간에 그냥 후르츠 푸딩이나 호호록 마시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같이 온 혈육이랑 씩 웃기나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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