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든 생명에게 그러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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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고속열차를 탔다.
비가 오는 오후여서 창 밖 풍경은 모두 눅눅했다.
나와 가까운 모든 풍경들은 빠른 속도로 뒷걸음질 쳤다.
먼 풍경들만이 느긋하게 뒤로 걸었다.
가장 먼 풍경들은 주로 산이었다.
멀고 느긋한 산들을 더욱 아스라하게 보이게 만든 것은
산 머리 위에 가득한 하얀 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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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네"
너무 유행해서 시쳇말이 되어버린 저 말을 내뱉고 혼자 조금 웃으며 무색해했다. 하지만 저 말 밖에는 없는 것을 어쩌랴.
하얀 김을 머리 위로 잔뜩 뿜어내는 산을 보니
정말로 이 땅이 살아있구나, 이 땅과 이 땅위의 전부가 생명이구나 싶다.
들숨과 날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며 불룩불룩 배를 움직이는 자연 위에서
나도 불룩불룩 배를 볼록이며 살아가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저 산에 기대고도 싶은, 또 산도 내게 기댔으면.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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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고 이 땅의 허리 어느매를 훑어가는 그 시간들동안
나도 산에게, 이 땅에게, 이 땅 위의 어떤 생명에게 참 포근한 시간이 되었으면. 나도 비옥한 땅이 되었으면. 하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