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북상해오는 오늘은 무척 바람이 많이 불었다.
날이 저물어 저녁이 되고 밤이 되자 바람이 점점 더 세차게 분다. 바람이 이리 세차게 부는데, 뜬금없이 인스타에서 <벚꽃엔딩>에 대한 포스팅을 본다. 이 바람이라면 벚꽃이 아니라 벚꽃 나무도 날려버릴 것 같은 데다, 지금은 벚꽃은커녕 나무들이 슬슬 잎을 떨구는 시월이라, 노래 제목에 낯선 기분이 든다.
장범준에게 봄마다 연금을 날라다 주는 제비 같은 이 노래는 두말할 나위 없는 봄의 캐롤이다.
아, 봄의 캐롤이라니. 이런 표현도 이 노래 이전엔 존재하지 않았다. 여러모로 세상에 큰 획을 그었다. 장범준은 아무래도 악마에게 영혼을 조금 떼어 팔지 않았을까? 남모르게 입대해 군대에 가 있는 장범준씨에게 면회라도 가서 소개를 좀 시켜달라고 하고 싶다. 커미션을 줘야 하나? 뭐 악마든 제비든, 좋은 거 있으면 서로 간에 소개도 좀 하고, 거 좀 알고 지냅시다.
잎사귀가 잎을 모두 떨구어내고 다시 새 잎을 내며 그렇게 계절이 돌아오는 것처럼, 저 노래도 계절처럼 돌아올 것이다. 계절과 함께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계절의 일부처럼 돌아올 것이다. 내년 봄에 그럴 것이고, 그다음 봄에도 그럴 것이고, 아마 그 다음다음 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성의 <벚꽃엔딩>이 봄마다 재생되는 횟수를 세어나가는 것도 어느 순간부터는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 노래에 얽힌 기억이 없는 남한 사람을 찾아보기도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그렇게 지구 상에 봄은 사라진다 해도, 한민족만 살아있다면 아마 이 노래는 어디서건 끊이지 않고 울려 퍼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한 오 백 년쯤 뒤에는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강원도 아리랑>처럼 지역색을 가득 담은 <남양주 벚꽃엔딩>, <흑석동 벚꽃엔딩>, <삼전동 벚꽃엔딩> 같은 버전들이 생겨나 대대손손 구전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살아 저 버전들을 볼 수 없을 테니 그리보면 나보다 노래가 영원한 셈이다. 지고 사라질 나의 생에 나보다 오래 남을 것을 남길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아무래도 저 커미션 줄 돈을 준비해야 하겠다.
나를 비롯 무엇 하나 영원하지 않은 이 세계 속에서 어쩐지 영원할 수 있을 것 같은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그 존재 자체로 조그마한 위안이 된다. 모든 것에 엔딩이 내정되어있는 이 세계에 엔딩이 없을 것만 같은 이 노래의 제목이 <벚꽃'엔딩'> 이라는 것에 혼자 재미가 져서 씩 웃고 말았다.
2017. 10. 22. 1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