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가는 길엔 꽃비였으면

하얗고 노랗고 작고 보드라웠던 너에게

by 릴리슈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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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속도로 자전거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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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작은 자전거 사고 이후 나의 운전 속도는 예전으로 돌아갔다.

걷듯이 타는 자전거라 굳이 자전거를 탈 이유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을 마치고 나오니 잔비가 내린다. 아, 자전거를 탈 수 있으려나. 파우치 속에 챙겨두었던 커피숍 휴지로 안장을 닦아내고 자전거 위에 올랐다. 빗방울이 조금씩 굵어지는 것 같아 모자도 꺼내 쓰고, 라이트도 꺼내 끼웠다.


그렇게 걷듯이 자전거를 탔다. 장마철이니 언제 비가 거세게 내리 꽂힐지 모른다. 그러나 비에 젖는 것보다 사고가 무서워, 나는 걷듯이 자전거를 탔다. 그렇게 차도 옆에 선을 그어 나누어둔 자전거 도로를 지나갈 때였다. 열심히 앞만 보던 내 눈동자에 하얀 뭔가가 들어왔다.

아, 차라리 그때 지나쳤으면 좋았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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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이상해서 자전거를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하얗고 노랗고 부슬부슬한 작은 것이 둥글게 놓여있었다. 아니 누워있었다. 새끼 고양이었다.


다가가는 동안, '성격이 서글서글해서 그냥 거기서 자는 거겠지'라고 생각하려 애썼지만, 그러기에 그곳은 도저히 잠들만한 공간이 아니었다. 가까이 다가가 바라본 작은 고양이는 자는 듯 누워있었다.


'그래, 자는 걸 거야. 봐봐 이렇게 조용하잖아'

하지만 볼록거리다 또 멈추는 배를 보며, 애써 하려 했던 오해는 단박에 깨졌다.

'얘 왜 이러지? 깊이 잠들면 배가 안 움직이나? 왜 배가 움직였다 안 움직였다 하지?'

배는 볼록거리다, 멈추어 있다, 그 작은 입이 크게 숨을 들이켜면 다시 경련하듯 부풀었다. 눈동자 상태를 확인해보려 했지만 이미 날이 너무 어두워 확인할 수 없었다.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검색을 시작했다. 길고양이 구조, 길고양이 신고, 길고양이..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네이버는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비슷한 경우에 대한 블로그 포스팅이라도 클릭했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 소용없는 정보들이 많았다. 이곳저곳에 전화를 했다. 인터넷 통신사를 바꾸려 했던 때가 떠오를 정도로 나는 여기에서 저기로, 거기에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시간이 없는 것 같은데'

숨이 더욱 불규칙해져서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그러나 전화를 받는 이들은 이런저런 말이 많았다. 자신들이 도울 수 없다는 말을 전하는 것을 무안해했던 것 같다. 그들의 시간은 무한해 보였다. 그리고 이곳 고양이의 시간은 몇 숨 남짓의 길이 정도로 유한해 보였다. 그리고,

그 몇 숨이 지나갔다.





하얗고 노랗고 보드라운 털로 덮인 배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아냐, 곧 다시 숨을 쉴 거야.'

나는 여기저기로 전화를 걸면서도 고양이의 배를 쳐다보았다.

"너 죽으면 안 돼"

나도 모르게 터져 나와버린 내 목소리에 당황했다. 목소리가 너무 컸고, 진심이었기 때문이었다. 진심으로 죽지 않기를 바라는 목소리였다. 만난 지 10분,15분 남짓된 작은 너에게, 이렇게 간절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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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미 새끼 고양이가 누운 자리의 공기는 달라졌다.

불규칙하게나마 볼록거렸던 배, 이따금씩 애써 크게 벌리던 입, 힘겹게 일으키던 머리. 그 모든 것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숨과 함께 뭔가가 빠져나가버린 것 같았다.


하나의 세계가 정지되는 순간을 무력하게 지켜보았다. 내가 했던 일이라곤 허둥대는 것 뿐이었다.

나는 부끄럽게도 작은 고양이의 배 한번 쓸어주지 못했다. 어렵게 숨을 쉬던 때는 혹시나 내가 고양이를 더 힘들게 할까 봐, 숨이 멈춘 이후엔 그 정지된 세계를 실감할까 봐. 나는 무서웠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이곳저곳의 게시판에 글을 썼다. 자꾸만 오타가 났다.

그때마다 저 옆에 가로로 누운 고양이를 한 번씩 쳐다보았다. 고개를 돌려 바라볼 때마다 다시 숨을 쉬고 있길 바랐지만 고양이는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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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자리를 떠났다.

양손으로 그를 들어 올릴 자신이 없었다. 덜컹이는 자전거 바구니에 담아 달려갈 자신이 없었다. 작은 고양이인데 그렇게 무겁게 보였다.

자리를 떠날 핑계가 많았다. 장갑이나 봉투나 박스도 없고 근방에 슈퍼도 없고.. 금방이라도 세차게 내릴 것 같이 떨어지는 빗방울이 그중 제일의 핑계였다. 나는 자리를 떠났다. 많은 핑계에 둘러싸였기 때문인지, 내쉬고 들이마시는 숨이 답답했다.


비에 젖은 채로 집에 돌아왔다.

잘 다녀왔냐는 식구들에 일상적인 인사에, 대뜸

"새끼 고양이가 내 눈앞에서 죽었는데, 두고 왔어. 요만했는데."

하고 두 손으로 고양이의 크기를 만들어 보였다. 그런데 내가 만든 그 크기가 너무 작아서 나도 모르게 울먹였다. 내 울먹임에 내가 놀라서 황급히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왜 네가 내 앞에 나타났는지 모르겠다고 허공에 대고 말하며 조금 더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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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나서 괜찮은 척 밥을 먹었다. 김여사가 내 밥상 곁에 앉아있었으므로. 나는 아무 말 없이 밥을 씩씩하게 먹었다.

나는, "왜 고양이가 내 눈 앞에서 죽었을까" 하고 물었다.

김여사는, "네 앞에서 죽었으니 다행일지도 몰라" 하고 대답했다.


다행인 건지 아직 모르겠어서 나는 방에 들어와 아까 남겼던 글을 열었다.

-가장 깔끔한 건 다산콜센터에 사체처리신고를 하는 거예요-라는 댓글이 달려있었다. 바로 다산콜센터에 민원을 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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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 생명이 떠난 자리에 민원이라는 단어라니.. 주민이 행정기관에 대해 원하는 바를 요구하는 것이 민원이라는데, 나는 행정기관 말고 저기 하늘이라거나 생명을 관장하는 대신이라거나 그런 쪽에 민원을 넣고 싶었다. 그 작은 꼬맹이에게 숨 조금 더 불어넣어주면 안 되겠냐고, 아니 숨 조금 더 불어넣어주시면 아니 되시겠냐고, 이중 삼중 몇 중의 존칭이라도 붙여 청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어디에다 대고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는 보통사람이어서, 그저 다산콜센터 상담사 분에게 부탁드린다고 감사하다고 연신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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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가는 길에 이런 나라도 있어서 다행이었을까? 너의 작은 몸 하나 떠올려 수습하지 못하는 이런 나라도?

네 마음까진 잘 모르겠어서 그저 미안하고 애틋한 마음만 보낸다.

너무 가볍고 하잘 것 없어 네게 가닿지 않을지라도, 그 마음만이라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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