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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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출판물을 주로 다루는 작은 서점의 인스타 계정 몇 개를 팔로우하고 있다.
그중 한 곳의 사장님이 지역 도서관에서 청소년들에게 독립출판 체험수업을 하셨나 보다. 아이들의 글이 담긴 책 사진이 올라와있었다. 아이들의 글이 인쇄된 페이지를 읽고, 하트를 누르며, 아 요즘 아이들은 이런 체험을 하기도 하는구나, 참 좋구나 하며 부러워하다, 불현듯 나의 청소년기에도 독립출판 체험이 있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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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50부 넘게 제작했던 그 독립출판물은 다름 아닌 학급문집이었다.
학급문집이라면, 논설문 몇 편, 독후감이나 영화 감상문 몇 편, 시화, 시대를 훌쩍 넘긴 시시한 유모어 같은 것들이나 들어있는 식상하기 짝이 없는 책일 수도 있지만 우리에겐 그렇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중학교 3학년, 우리 반은 학기 초부터 어쩐지 유난스러웠다.
반 아이들 37명 모두는 제각각 뛰어난 학업성취도... 를 자랑했으면 좋았겠으나, 제각각 개성만이 강력하였다. 뭐랄까, 낭중지추라는 말을 가져다 쓴다면, 크다란 포대에 이꼴저꼴의 송곳이 서른일곱개 들어 있는 셈이었다.
우리들은 골치 아픈 포대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담임선생님은 그 포대를 밀가루 반죽처럼 이리 개고 저리 개었다. 반죽을 만두 빚는 틀에도 넣어보시고, 칼국수처럼 뽑아도 보시고, 제빵도 하셨다. 갖가지 일들을 벌이셨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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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학교에서 참치와 계란과 고추장과 참기름과 골뱅이를 넣은 비빔밥을 해 먹었다. 먹고 난 뒤 설거지한 냄비를 실수로 2층에서 떨어뜨렸는데 마침 교감선생님이 지나가다 맞을 뻔 했다. 우리는 꼼짝없이 교무실에 불려 갔다. 남자축구 우승예상팀을 보유하여 우승의 기쁨을 누릴 생각에 한 달 전부터 들떠 있었다. 그리고 예선 첫 경기에서 최약체 2반에게 졌다. 이후 집단 우울증에 걸린 남자아이들은 축구공 대신 쓰레기장의 쓰레기들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중 신명이 남다른 아이가 풍물가락을 가르치는 바람에 다들 쓰레기를 주워와 학교 운동장에서 밤낮없이 두들겼다. 그러다 그게 음악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학교에 소문이 안 날 수가 없었다. 학교 축제에서 한자리를 차지해 무대 위에 올라 난타 공연을 했다. 신이 난 나머지 학교 옆 한강에 가서 자체 운동회를 한번 더 열고는 기세를 몰아 졸업 전 안면도로 졸업여행을 떠났다. 건전한 청소년 영화의 클리셰가 몽땅 들어있는 일 년이었다.
그리고 그 대미를 학급문집으로 장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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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반죽을 솜씨 좋게 하셨던 나의 담임선생님은, 학기가 끝날 무렵,
"학급문집을 만들자!" 라고 하셨다.
'선생님 또 일을 저지르.. 벌이시는!' 이라고 속으로 혼자 일발 비명을 지르던 내게, 선생님은
"니가 해봐라!" 하며 일감을 던져주셨다.
'글을 쓰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열다섯 소녀에게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판을 열어주셨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잡다하고 얄팍한 잔기술이 많은 데다 대단히 공부를 하지는 않아 시간이 많은 부반장 아이라면 꽤 쓸모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셨을 거' 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뭐, 어쨌거나 나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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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방학 내내 학교에 나갔다.
교무실 옆 총무실 같은 곳에서 타이핑을 하거나 프린트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고 복사를 했다.
열심히 책을 만들다 점심 때면 교무실에 당직을 나오신 선생님들과 함께 짜장면을 먹었다. 울면을 처음 먹어보았던 때도 그때다.
그렇게 학교에서 짜장면이나 볶음밥과 어머님들이 응원차 보내주신 한 박스쯤의 귤과 간식을 먹으며 겨울을 지내고 나니 문집이 나왔다.
겨울을 뚫고 나온 문집에서는 하얗고 쨍한 겨울 공기의 색깔과 냄새가 났다. 그런데 집어 들어 펼치면 겨울이 아닌, 오월 같은 노오란 햇볕이, 막 몸집을 키워나가는 아직 여린 잎들의 초록빛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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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차갑고 따뜻한 문집은 여전히 내 방 책꽂이에 잘 꽂혀있다.
나의 글과 그림도 그대로 거기에 잘 담겨 있다. 그 뒤로 그림은 그리지 않아, 그림실력은 그 시절 그대로 멈춰있다. 그런데 글도 그럴까나? 엇. 그렇담 곤란한데.
어쨌거나 아이들에게 원고를 청탁하고 받아오고 교정 교열을 하고 타이핑을 하고 이리저리 순서를 맞추어 묶어냈던 기억들이 아직도 선하다.
기억에 이끌려 책꽂이에서 문집을 빼낼라치면, 그때의 설레임, 편집장이라도 된 것 같이 해댔던 심오한 고민들, 많은 회의의 추억이 따라 쏟아진다. 귀엽고 풋풋한 데다 하얗고 쨍한 공기의 겨울까지 들어있는 기억들.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는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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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뒤로 한참이 흘렀다.
나는 여전히 자판을 두들기며 뭔지도 모를 글들을 쓰고 있다. '그러게. 이러고 있네.'
이렇게 계속 자판을 두들기고 살 거란 걸, 우리 담임선생님은 알고 계셨던 걸까? 아니면 그러길 바라셨을까?
그 생각 끝에,
'책을 내게 된다면 선생님께 서문을 부탁드려야겠다!' 하고 생각했다가,
'과연 보여나 드릴 수 있는 책을 낼 수가 있을까?' 싶어서 시름에 잠겼다가,
‘그러나 언제고 그런 책을 낼 거야!’ 하고 힘을 불끈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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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꽃 한 다발이랑 고소한 쿠키와 차 같은 것과 막 뽑아낸 따끈한 글자들이 쌓인 원고 한 뭉치를 들고 드넓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씩씩하게 걸어갈 나를 바라본다.
나는 이윽고 교무실에 당도하여, 회전의자에 앉아 각종 서류들을 뒤적거리고 계시는 선생님 앞에다가 그 모든 것들을 털썩 하고 내려놓을 것이다.
그리고는 아주 그냥 유들유들한 웃음을 지으며,
“서문을 써주세요!”
하고 외칠 것이다.
“내 써주마!”
고 하실때까지. 징글하게 조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