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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켓이 조금씩 익숙해져 조금씩 먹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또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입 속에는 여러가지 은밀한 공간들이 생겼다. 기존에 있던 치아와 치아 사이의 틈 뿐만 아니라 그 틈들과 브라켓들이 만들어 내는 갖가지 크기와 모양과 위치의 공간들이 그것이다. 그것들은 음식 속 모든 각각의 재료들에 알맞게 특성화가 된 것 같았다. 밥을 먹고 나면 모든 재료들이 그 공간속에 안온하게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을 이렇게 해서 그런데 그냥 '잔뜩 끼어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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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가장 명징하게 보여주는 음식이 있었는데 바로 김밥이다. 다채로운 재료들을 온화하고 넓은 품으로 가득 안고 있는 마더얼스같은 음식이여, 코리안소울푸드. 소풍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앞둔 설레임과 고단한 여행길에서도 넘치는 영양분을 한입에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경제성을 두루 갖춘, 분식이라는 이름 아래 두기엔 너무나 거대한 존재감, 김밥. 개인적으로는 떡볶이, 카레와 함께 나의 3대 소울푸드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는 음식. 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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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토록 사랑하는 김밥을 하필이면 치과에서 이를 잔뜩 갈아내고 돌아온 날 먹고 싶어진 적이 있었다. 나라는 사람, '내가 마음을 안먹어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전교 1등..' 이라고 외웠던 학창시절의 주문을 다시 꺼내 주워 섬기며, 마음 먹으면 해낼 수 있을 거라 믿고 자신있게 멸추김밥을 한줄 말아가지고 왔다. 썰려진 김밥 한 알은 큼직했지만, 쪼개는 일이 없이 한 입에 넣어야만 김밥이므로, 나는 입을 벌려 김밥 한 알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단 1회의 저작운동만에 나의 어리석음을 그야말로 뼈저리게 느꼈다. 정말로 뼈가 저렸으므로..
매끄러운 표면 때문에 순발력있게 씹어내지 못하면 채 자를 수도 없는 고추가 미끄러져 나가며 몇 시간 전 갈아낸 치아를 휩쓸고 지나갔다.
눈 앞이 번쩍!
섬광을 보여준 이 저림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졸여진 우엉의 짱짱한 조직감, 이리저리 헝클어 바짝 말렸기에 더욱 쫀쫀하게 엉기어 있는 김, 단단하고 촘촘한 육질의 단무지, 한 알씩 낱낱이 살아있는 고들한 밥알들, 뾰죡한 꼬리와 머리로 이곳 저곳을 잔뜩 들쑤시고 다니는 멸치들까지..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게 너무 맛있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씹을 수도, 뱉을 수도 없는 맛과 질감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김밥의 반은 녹히듯, 반은 삼키듯 하였다. 때문에 한 줄을 채 다 먹지 못하는 대참사가 있어났고, 결국 두어알 남은 김밥을 알미늄 호일에 돌돌 말아 뭉쳐두었다. 뭉쳐둔 모양이 꼭 먹을 수 없는 것을 동동 싸놓은 것처럼 보였다. 사실 그렇기도 했다.
*컷컷 /김밥과 치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