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기 외전] 사랑니 야속하더라1

매복 사랑니 발치기_ 사랑니 너를 발로 차고 싶다.

by 릴리슈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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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이가 아팠다. 썩었나? 겉으로는 다들 번듯해보이는데 이상한 일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어지간히 아프지 않고서는 가지 않는 치과인지라, 통증이 며칠이나 지속되고 나서야 나는 치과 진료를 잡았다. 소개를 받아 간 곳. 엑스레이를 찍고 나니 의사선생님이 말이 없다.


"슨상님, 무슨 말이라도.."

"매복 사랑니입니다. 누워있고요, 아주 큽니다."

모니터에 가득찬 내 윗니와 아랫니의 양 끝에 가지런히 누워있는 사랑니들을 가리키며 그가 말했다.

'저렇게 다소곳한 아이들이 왜? 뭐가 문제지?'


마침 사랑니 전문 발치의였던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살짝 주름진 미간으로 미처 다 숨기지 못한 긴장감이 드러났다.

'다 뽑으셔야 해요. 그런데 자리가 만만치 않네요..'

하긴, 엑스레이란 덮여있는 것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덮여있는 잇몸들을 걷어내고 거대한 사랑니를 꺼내야 하는 일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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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하든 만만하지 않든, 해야하는 일이므로 나는 진찰대에 누웠다.

원장 의사선생님이 나의 잇몸을 열어서 사랑니를 찾았다. 너무 커서 그냥 꺼낼 수가 없어 작게 쪼개어 꺼내려고 했으나 너무 커서, 쪼개어도 작지 않았고 때문에 쉽게 꺼낼 수가 없었다. 두 명의 간호사가 차례로 다가와 나의 턱이나 사랑니를 잡은 집게를 붙잡았다.

그렇게 한시간이 흘렀다.


어른 세 사람이 나의 작은 입구멍을 통해 숨어있는 거대한 사랑니를 꺼내기 위해 한시간이 넘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을 보니, 얘는 뭔데 이렇게 안나오는가 싶어 본체인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렇게까지 나오지 않는 것을 나오도록 애쓰는 직업적 사명감이 가득한 이 분들이 안쓰럽기도 해서, 나는 입을 한껏 벌린 채로 웃으며 말했다.

"너흐 아나아허 어허해혀." (너무 안나와서 어떡해요.)


환자가 입을 한껏 벌리고 입가에는 피를 질질 흘리며 히읗을 잔뜩 섞어 겨우 말하는 주제에, 힉힉대며 웃기까지 하는게 우스꽝스러웠는지, 아니면 누가 누구 걱정을 하나 싶어서 그랬는지, 세 선생님들도 진땀을 닦으며 웃었다.

"그러게요, 너무 안나와서 어떡해요."

우리는 웃으며 다시 사랑니 채취에 전력을 다했다.


1시간 반 가까이의 사투 끝에, 무엇인가가 뽁! 하고 나왔다. 쪼개놓은 사랑니 조각 중 하나였다. 세 사람의 탄성이 함께 흘러 나왔다.

조각 하나가 나오니 그 빈 공간을 빌려 다른 조각들도 금새 뽑혀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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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치가 끝나고 의사선생님은 나에게 희여멀건한 이빨조각을 보여주었다.

"이게 전체가 아니고 일부예요. 엄청 크죠?

이 정도 사이즈는 보통 2년에 한번씩이나 볼 수 있는 크기예요.

그것도 남자분 사이즈죠."


나는 사랑니가 빈 자리 때문에 헐거운 기분이 드는 턱을 붙잡고 큭큭댔다.

도대체 이렇게 흔치않은 이빨이 내게 네개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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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을 싸안고 약을 받아서 집으로 가려다, 본가로 갔다.

밥도 못먹을텐데 집에 와서 요양하라는 어머니의 말 때문이었다. 그러게, 별 거 아닌 줄 알았는데 정말 이게 장난이 아니다.


때는 한여름이라 날은 덥고, 볼은 잔뜩 부어 입을 다물고 있을 수도 없었다. 누워서 가만히 티비나 보려고 해도 침이 쥘쥘 흘러나와서 그럴 수도 없었다. 자리에 반듯하게 누워 한 손으로는 볼에 아이스팩을 대고 생각했다.

'근데 이 짓을 또 해야 해?'

오늘은 왼쪽 위 아래의 사랑니를 제거했고, 나머지 오른쪽 위 아래 두개의 사랑니가 남아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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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기는 일주일 가까이 이어졌다.

4,5일을 제대로 된 밥을 먹지 못했다. 그리고 3주 뒤, 나는 나머지 두개의 사랑니를 만나러 치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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