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묘한 냉장고 자석_ 3

전생 같아

by 릴리슈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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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이 짧아 금세 큰길이 나온다.

"다 포장되었네... 저기가 그 또랑이야. 홍수 때 소 떠내려가던."

말로만 듣던 이름 모를 그 또랑에는 다리도 생겼고, 산지천이라고 쓰인 커다란 표지판도 생겼다.

"이렇게 커졌네.."

물은 없었지만 도랑이라고 하기엔 이젠 꽤 큰 냇가였다.


산지천을 지나 계속 걷다 엄마는 우뚝 멈춰 섰다.

"여긴데..."

인적 드문 큰 길가에는 주유소와 요양병원이 있었다. 집터의 흔적은 아무 데도 없다. 낡은 사진에서 보던 나무들과 비슷한 생김의 나무들이 큰길 너머에 멀쭈름이 서 있었다.

"저런 나무들이 가득 있었어, 방풍림이라고.. 근데 저 나무들은 아니야.."


고개를 이곳저곳으로 돌려 흔적 하나라도 찾아보려던 엄마는 큰 길이 멀리까지 뻥 뚫린 것을 확인하고는 내 팔을 다시 잡아당겼다.

"가자. 없다."

"그래? 그래도 저기까지 가볼까?"

"아냐. 다 큰길이 되버려서..."

엄마는 등을 돌리고 당신의 평소 걸음대로 힘차고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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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어 흑돼지를 야무지게 먹고 숙소에 왔다.

영수증을 정리하던 내 등 뒤에서 얼굴에 팩을 붙이고 가만히 누워 있던 엄마가 말을 꺼냈다.


"첫사랑을 나중 동창회 때 만나면 그렇게 실망스럽다데?"

"그래?"

"지금이 꼭 그래. 언제고 한 번은 꼭 보고 싶다는 마음 가지고 살았는데,

막상 보니 너무 많이 변했고, 아무것도 남은 게 없네. 내 기억 속에는 이렇게 어제처럼 생생한데."

(이 대목을 떠올리면 나는 매번 눈물이 난다.)


"그치 엄마, 내 기억 속에는 너무 선명한데, 기억이랑 붙어 있는 감정들도 똑같은데.

정작 실체는 사라지고 없다는 게 너무 이상해."

"꼭 전생 같아."

"맞아.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전생처럼 느껴질 날이 오겠지?"

"그렇겠지?"

"우리 손에 쥔 건 이 순간뿐인데, 우린 왜 이렇게 사라지고 없는 과거 속에서 살까?"

"그러게, 이렇게 다 사라지고 없는데.."


나는 핸드폰 메모장 위를 달려가던 손가락을, 엄마는 팩이 더 잘 붙으라고 만지작거리던 손가락을 멈추었다.

사라지고 없는 전생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던 우리들 마음도, 이내 풀이 죽어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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