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좀 멋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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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도착하고 일주일 뒤, 책상 위에 올려놓은 자석이 담긴 종이봉투를 집었다.
제주에선 공허한 나를 구원해줄 것처럼 반짝이던 것이 서울에선 그저 그런 기념품으로 보일까 봐 신경이 쓰였나 보다. 나도 모르게 봉투 뜯는 걸 미루다 결국 뜯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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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보다도 작은 자석을 꺼내니 '전생'이라고 도장을 콱 찍힌 기억들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를 쎄하게 쓸고 지나가더니만, 떠나는 날 제주공항 기념품 가게에 선 나를 보여준다. 이야, 이것 좀 봐. 정말이지 기막히게 신묘한 냉장고 자석이다.
'즐거웠던 여행지에서만 사려고 했는데, 이번에 이렇게 마음이 울적해서.. 사도 될까?' 하며 고민하고 서 있던 내가 '아니, 쓸쓸하지만. 이번 여행은 꼭 따뜻하게 남기고 싶어.' 굳은 결심을 하고는 손에 자석을 꼭 쥔 채로 씩씩하게 계산을 하러 간다.
'쓸쓸하지만. 이번 여행은 꼭 따뜻하게 남기고 싶어.'
'쓸쓸하지만. 이번 여행은 꼭.
'꼭.'
'... 따뜻하게 남기고 싶어.'
아.. 이거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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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한번 더 힘을 냈던 마음. 그 마음이 이렇게 생생하다니.
게다가 공허함보다 겨우 손톱만큼이나 조금 더 컸을 그 마음이 지금엔 제주여행을 지배하는 기억이 되었다는 것이 당황스럽도록 놀라웠다. 그리고 그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 작지만 강한 마음을 끄집어낸 것이 다름 아닌 '나'라는 사실이었다. 뭐야, 나 좀 괜찮은데?
거기까지 가서 전생의 눅눅함만 느끼고 온 것 같아 시무룩했는데, 그 덕에 이렇게 꽤 단단한 현생의 나를 발견했다. 오. 이번 여행 좀 괜찮은 듯?
이제 막 냉장고 자석을 포장해 나온 내가 그 소리를 뒤따라 내게 묻는다.
'그래? 그럼 또 가볼까?'
뿌듯한 마음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던 나도 호쾌하게 답했다.
'그래. 내 너만 믿고 가지! 얼른 다시 이 신묘한 냉장고 자석을 사러 떠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