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빨강 나이키 수영복
-
딱히 장비에 신경 쓰지 않는 타입이어서, 노련한 해녀분 잠수복 같은 수영복만 주구장창 입다가 좀 상큼한 걸 입어보려고 나이키 스윔에 갔는데 세일을 한다고 해서 새빨간 수영복을 사 가지고 온 게 한 달 전.
검은색 남색 사려고 뒤적거리는데 그럴 거면 왜 나이키를 왔냐고 원색 빡 이런 거 사야 하는 거 아니냐는 혈육에게 얕보이기 싫어서 보란 듯이 빨간색을 골랐는데, 집에서 한번 더 입어보니 레스링 선수의 품격이 느껴져 차마 용기를 더 내어보지 못하고 다시 쇼핑백에 고스란히 담긴 게 한 달째.
어제는 수영 카페 장터에 들어가 조용히 내 빨간 수영복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씁쓸..
-
수영복 하나 고르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
회사별로, 모델별로, 소재 혼용률 별로 같은 몸뚱이에 세상 다른 사이즈가 맞아버리는 게 수영복인 것인데, 문제의 그 알맞은 사이즈를 찾기 위해 물기 없는 몸뚱이 위에 쩍쩍 붙어 올라가지 않는 수영복을 얼르고 달래며 끌어올려 입어보아야 하는 것이다. 좁고 어둑한 탈의실에서의 고독한 싸움..
그렇게 고군분투한 만큼 마음에 딱 드는 것으로 골라올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자기 입을 거 아니라고 대충 던지는 혈육의 훈수에 울컥하고 새빨강을 사버린 어제의 나여.. 내 수영복의 좌표는 어디인가...
-
하지만 포기할 수 없지, 나의 빅데이터를 부지런히 수집하여 신상 광고를 보내오는 나이키 스윔의 정성을 봐서라도 나는 다시 기꺼이 탈의실에 들어가, 들어가지 않는 수영복 끈을 어깨로 당겨 올리며 알맞은 사이즈와 감당할 수 있는 색상을 골라 올 것이다.. 나는 네가 어디 있는지 모르지만... 나는 널 찾을 것이다. 찾아내서, 널 입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