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대신하는 것, 내가 하는 것, 누구도 할 수 없는 것.
- 나의 완벽한 수영가방
토요 자유수영을 하러 수영장에 왔다. 5시에 마감이므로 4시 30분쯤의 샤워실은 고즈넉할 정도.
뜨거운 물줄기를 여유롭게 맞으며 각종 샤워용품들이 제각각의 칸을 가지고 가지런히 서 있는 핫핑크색수영가방을 내려다보았다. 잠시 나의 수영가방이었다가, 대기 1년 만에 사물함을 배정받은 기념으로 엄마에게 토스한 수영가방. 샴푸, 린스, 바디샤워, 샤워볼, 칫솔, 치약 등의 샤워용품은 물론, 수영복, 수모, 예비수모, 물안경 등등이 다 뒤섞여 늘 아수라장인 가방에 지쳐 정갈히 정리할 수 있는 형태를 찾아 인터넷의 배가본드로 살다 결국 주문 제작하게 된 그 가방. 너무 맘에 들어 엄마도 하나 했으면 좋겠다 했지만 사물함 없이는 들고 다니기 더 불편할 것 같다며 거절하기에 괜히 내가 더 아쉬워했는데, 마침 그즘에 드디어 엄마에게 사물함이 배정되었다.
"잘됐다! 그럼 수영가방 하나 사줄께!"
"뭣하러, 엄마는 괜찮아. 괜찮아."
"에이, 그럼 나 한동안 수영 못가니까 일단 내꺼 써."
딸 돈이라면 푼돈도 손사래치는 엄마라서, 나는 이제 두어번 든 가방을 통째로 떠넘겼다.
나는 완벽한 공간 활용과 탄탄한 재질, 바래지 않는 색깔에 감탄하며 가방을 관찰했다.
가방 안에는 내가 구비해두었던 샤워용품들이 조금 날씬해진 채로 그대로 차곡차곡 서있었고, 때밀이계의 에르메스라 불리는 00 산업의 때밀이 장갑 한 켤레가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몸에 닿기만 하면 물기를 한방에 빨아들이면서도 가볍고 관리가 편리한 수영 전용 수건도 새것의 빳빳한 느낌은 없어졌지만 그대로 거기에 있었다. 다 내가 챙겨둔 것이거나 엄마에게 사준 것들이다. 저것들을 하나씩 살 때마다 엄마는 "굳이 그런 거까지 없어도 집에 있는 거 쓰면 되는데.."라고 말했지만, 사용 후에는 나에게 아이템 간증을 할 만큼 감동했다.
"야, 이거 없으면 어쩔 뻔했어."
좋아하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며 다시 아이템들을 둘러보았다. 내가 없었으면 엄마는 이런게 있는지 몰라서, 아님 굳이 살 필요 없다며 써 볼 일이 없었겠지? 아무리 정돈해서 넣어도 아수라장이 되고 마는 수영가방에서 물먹어 잔뜩 무거운 면수건을 매일 꺼내 말리고, 때밀이 수건이란 건 본디 거친 거라고 알고 있었겠지. 나는 뿌듯했다. 엄마를 더 편리하게 해 줄 수 있는 것들을 계속해서 좀 더 많이 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혼자서 등을 밀도록 도와주는 때밀이봉을 보니, 엄마를 편리하게 해주는 것들 중엔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도 있을텐데. 방법이나 도구만 좇으며 찾다 내가 손 댈 수 있는 것들을 지나친 것도 있었겠지..
조금 앗차, 싶은 마음이 든다.
그리고 그 누구도 해줄 수 없는 것들도 있었겠지.
- 나를 대신하는 것, 내가 하는 것, 누구도 할 수 없는 것.
새벽에 잠에서 깬 엄마가 바로 먹곤 하는 오트밀이 떨어지지 않게 부지런히 사다 놓으며, 종이죽 같은 불린 오트밀을 엄마가 좀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생각해보는 것. 주말 수영만큼은 효자손 같은 때밀이봉 대신 내 손으로 엄마의 등을 미는 것. 그리고 엄마만의 시간과 여정을 고요히 지켜보는 것. 그 세가지로 대표될 세가지 영역들을 고루 들여다보고 싶다. 그렇게 엄마의 삶을 가장 알맞은 거리에서 함께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