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네가 해어져도 헤어질 수 없어_ 2

까망 레스포색 백팩

by 릴리슈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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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그만둔 뒤, 나는 새로이 진로탐색을 시작했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갖가지 것들을 배우러 다녔다. 노트북과 카메라 대신 중국어 교재나 무용 연습용 신발이나 수영 꾸러미, 만년필과 잉크, 다양한 무게의 종이 엽서 같은 것들을 까만 백팩에 무시로 넣고 뺐다. 먹고 사는 거랑 너무 상관없어 보이는 것만 골라 배우러 다닐 때에도, 가방은 별 말없이 내 친구들을 담아주었다. 하고 싶은 일을 여전히 찾지 못했을 때에도, 그중 하고 싶은 것 비슷한 일을 찾아 다시 공부를 하게 되었을 때에도. 가방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 흔한, 애정을 빙자한 허튼소리 한마디 없이 내 것이라면 무엇이든 담아주었던 가방 덕분인지 나는 직종 변경에 성공했고, 어찌 용케 잘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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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잘 버텨보려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좀 하고 돌아왔다.

뭐나 쓸까 하고 노트북을 들고 벽에 비스듬히 기대앉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까 도서관 갔다 와서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레스포색 백팩이 어느새 나와 같은 모양으로 비스듬히 기대앉아있다. 가방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무슨 오래 사귄 벗의 옆모습을 바라보듯 한다. 그래 그랬지.. 하며 아주 옅다가도 때론 눈 앞처럼 선명한 우리의 시간들을 본다.

'뭐가 너를 그 시간 그 공간으로 데려갔을까?'

_뭐래, 누구겠어. 너지._


_ 야, 억센 가방이 나달 나달 해져서 버릴 정도가 됐으면, 뭐 회사도 그만뒀겠다 그쯤에서 좀 쉬지, 뭘 또 똑같은걸 새로 사서 또 막 다녀.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거 몽땅 배워보겠다고 무슨 한풀이 하듯이 돈이며 시간이며 막 써. 다시 3년도 넘은 가방이 아직도 새것 같다고 또 막 극찬 극찬을 하면서 또 막 어디를 들고 다니려고 해...

사람 참 안 변해. _


맞어. 너처럼 사람도 잘 안 변해.

근데 난 이거 괜찮은 거 같어. 막 다니는 거, 막 해보는 거, 나 진짜 쫄본데도 진짜 후달달달 하면서 막 하고 있잖아. 덕분에 별거 별거 다해봤어. 아직 못해본게 더 많지만.. 여튼 난 이거 꽤 괜찮은 것 같아.. 그래서,

잘 해어지지 않는 너처럼, 이런 나도 잘 해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동안 꽤 재밌었거든. 시간 지나 이런 내가 조금씩 해어지더라도, 영영은 헤어지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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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 끝에 가방이 푸스럭, 하고 조금 내려앉은 것 같은데.

어디 가만히 붙어있지 못할 제 운명을 체념한 때문인지 뭔지는 모르겠다만,

마, 주인이 역마라 어쩔 도리가 없다. 같이 가자, 그게 어디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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