봐, 이럴 줄 몰랐지?

영화 <벌새>의 대사 스포가 있습니다.

by 릴리슈슈


#1

큰 싸움 다음날 엄마와 아빠가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본다.

혼자 밥을 차려서 식탁에 앉아 먹는 은희.

건너편에서 티브이를 응시하고 있던 엄마와 아빠가 깔깔깔 웃는다.


"하하하하~ 뭐야 바보 같아~"




#2

은희와 친구는 문방구에서 물건을 훔치다 붙잡힌다.

부모님 뭐하시냐는 말에 은희의 친구는 은희 부모님의 떡집 좌표를 불어버린다.

소원하던 시간을 지나 친구가 한문학원이 끝난 뒤 은희를 불러 말한다.


"미안해.. 무서워서 그랬어."




#3

은희가 친구에게 한참 이야기를 하고,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

친구는 말한다.


"우리 엄마 아빠 이혼해. 난 아직 누구랑 살지 못 정했는데.

근데 너 그거 알아? 너 가끔 너만 생각하는 거?"




#4

수술을 하러 입원하기 전, 은희는 좋아하는 한문 선생님에게 책과 함께 줄 편지를 쓴다.


"선생님, 제 삶도 언젠간 빛이 날까요?"

- 은희 올림




#5

한문 선생님인 영지가 은희에게 보냈던 선물상자에는 스케치북과 함께 편지가 들어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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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서 영화에 대해 찾아보다 감독이 사용한 '미해결 과제'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미해결 과제처럼 남았었던 중학교 시절과 건강하게 안녕하고 싶었다는 말. 그를 위해 30대를 바쳤다는 말에 더는 끄덕일 고개가 남아있지 않을 사람처럼 공감했다. 미해결 과제를 해결해보려고 발버둥 쳤던 나의 시간들을 돌아보았다. 나는 20대를 바쳤다. 20대 때는 그것이 고되었고, 30대에 들어서는 종종 그 시간의 의미를 잊어버리곤 아깝게 느껴버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영지의 말처럼 '세상이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라고 느낄 수 있게 되었던 것은 모두 20대의 십 년 덕분이다. 20대 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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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이렇게 먹고 싶은 것도 안 참고 사 먹고, 여행도 한 번씩 갈 수 있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지.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좀 더 웃고 지낼 걸, 싶어."

같이 영화를 보고 나온 엄마와 호수 옆 작은 레스토랑에서 피자 조각을 나눠 먹고 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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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해결 과제들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20대 때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지금 내게 일어나듯, 서른의 엄마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지금의 엄마에게 일어나듯. 그래, 그럴 거라고,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다우니, 그러니 계속 가보자고 베이컨 피자를 씹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피자는 맛이 없었지만 혹시나 해서 같이 시킨 까르보나라 스파게티는 맛있었다. 가을 하늘은 맑고 푸르렀고 엄마는 웃고 있었다.


'봐봐, 멋진 30대야. 이럴 줄 몰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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