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에 처음으로 앵경을 맞추었습니다만_ 2

아니야 멀어도 괜찮아

by 릴리슈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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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을 싸들고 좌석에 앉았다.

과연 하느님석이었다. 온 인류를 굽어 내려볼 수 있을 것 같은 자리였는데, 그 인류 속에 나의 최애가 포함되어있고 그 뜻은 최애 역시 콩알처럼 보이리라는 것으로, 조금 슬펐다.

하지만 오늘의 내게는 눈이 두 짝 더 있으니까! 하며 시작 전부터 안경을 챙겨 썼는데, 아.. 처음 쓰는 안경이란 이렇게 어질어질한 것이군요. 가뜩이나 하느님석이라 고도가 높은데 어지러워지기까지 하는 바람에 이러다 천상에서 저승으로 직행할 것 같았다. 아.. 최애를 눈 앞에 두고 갈 수는 없다..

등은 등받이에, 시선은 오프닝 영상에 고정. 신체의 안전 및 나와 안경 간의 동기화를 위해 위의 두 가지 사항에 집중하며 콘서트 시작을 기다렸다, 그리고.


!

최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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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최애는 발치에 가득 모여있는 스탠딩 덕후들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하거나 손을 흔들어주고 있었다.

'저기요 선생님! 여기 하느님석에도 선생님의 덕후가 있어요. 선생님, 선생님?'

최애를 보며 내향인 덕후는 속으로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체조경기장이라도 그렇지 아무리 만 오천 명 규모라도 그렇지 아니 이렇게 얼굴이 콩알보다도 작게 보일 수가 있나요 표정도 식별이 거의 안 갑니다 하느님.'

하느님석에 앉아서 하느님을 불렀는데 하느님은 대답이 없다. 모든 것이 예상대로여서 나는 조금 더 슬퍼졌다.

참, 이럴 때 외우는 정신승리의 주문이 있었지. 나는 주문을 외웠다.

'나는 음악을 들으러 왔다.. 나는 음악을 들으러 왔다... 나느으으으흐흐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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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을 삼키는 사이, 공연이 시작되고.. 끝났다. 음?

'무릇 최애의 공연이란 그런 거 아니겠어요. 순식간인 거예요. 게눈을 막 감춘다니까. 특수상대성이론이 이런 거 아니에요? 시간과 공간이 관찰자에 따라 상대적인.... '

억울하도록 빨리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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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2시간도 안 되는 공연에 그렇게 큰돈을 쏟는지 알 수 없었는데

그 2시간을 한 달 동안 곱씹는 것이었다. (<묘조의 일지>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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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들과 주접을 늘어놓으며 공연을 곱씹으며 한 달을 더 산다.

_ 그거 봤어요? 그때 피아노 부술 듯이 칠 때 마침 불꽃도 퐉 터지는데 제 마음도 그때 터졌잖아요..

_ 하.. 오케스트라분들한테 손들어서 싸인 주는 거 봤어요? 저는 저한테 인사하는 줄 알고 같이 손 흔들었잖아요..

_ 아니 그때 기타 치시다가 쾅! 할 때 박자 맞춰서 점프하는 거 보셨어요? 아니 하다하다 이제 점프까지 잘하시면 저희같은 덕후들은 어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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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인 같았던 시력처럼 모든 것이 선명하게 남아있으면 좋으련만, 아무리 주접을 떨어도 곱씹어도 자꾸만 흐려지는 기억이 더 많다. 기억이 흐려지니 더욱 꿈같은 기억이 된다. 꿈인가? 안경을 보며, 꿈은 아니었구만 한다. 아니 꿈이었어도 좋으니 다시 한번 꾸고 싶어 다음 공연을 기다린다. 언제 다시 올 지 몰라 더 기다려지는 다음을 기다린다. 콩알같이 작게 보여도 좋으니 얼른 그날이 왔.. 아니 표정 정도는 보였으면 좋겠..

아직 열리지 않은 공연을 상상하며 일어나는 인지부조화에 혼자 미리 괴롭지만, 아니 그냥 일단 공연이 좀 있었으면 좋겠따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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