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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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것처럼 고요한 새벽 1시.
평소와 같은 고요함이었을 텐데 막 조율한 신선한 가야금 소리가 지나가니 고요가 더 깊다.
'이렇게 깊은 고요였나, 우리집이.'
그러고 보니 지난 삼 주간 통제불능이던 분노 덩어리가 거짓말처럼 안 보인다.
줄을 울리는 농현에 딸려 같이 어디론가 떨쳐져 나간 걸까, 마음이 가야금 몸통처럼 비워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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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구부려 구석구석을 적당히 꼼꼼하게 훔쳐냈다. 먼지가 닦인 자리에 고요가 들어차는 것 같다.
고요한 가운데 고요를 위한 자리를 더 만들려는 듯 바닥을 닦는 일이 좋았다.
방문 뒤 경첩 근처의 바닥을 몇 번 닦고 나서, 문득 오래된 꿈이 떠올랐다.
_ 이렇게 살려고 했지. 바닥 닦듯 마음을 잘 닦고 싶었지. 고요하고 싶었지.
처음 마음을 가진 뒤로 한 번도 변하지 않은 꿈.
한 번도 잊은 적은 없었지만 그 꿈을 이렇게 선명하게 느낀 것이 너무 오랜만이었다.
어떻게 이게 오랜만일 수가 있지. 이 감각이. 이 고요하고 선명한 감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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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왜 그렇게 조율이 하고 싶었을까 했는데, 가야금이 나를 불러다 세운 건가 싶다.
네 고요를 다시 찾으라고. 머리로 지어내지 말고 감각을 통해 마음으로 선명하게 다시 느껴보라고.
다른 무엇 말고 그 느낌을 나침반으로 삼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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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앞에서 걸레를 쥐고 쪼그려 앉은 채로 뒤를 돌아보았다.
줄을 단단하게 쥐고 있는 가야금의 모습은 오랜만이라 조금 낯설었다.
하지만 저게 가야금이지.
느슨하게 늘어지거나 풀어지지도, 너무 팽팽하게 당기어지지도 않은 열두 줄을 가지런히 쥐고 있어야지.
반들반들한 현침으로 쏟아지는 빛을 한껏 반사시키며 더 반짝거려야지. 먼지를 걷어낸 짙고 밝은 나무의 결결을 한껏 드러내어야지. 그럼. 그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