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아름다운 일

극단 학전 <아빠 얼굴 예쁘네요>

by 릴리슈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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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아동극을 보러 갔다. 좋아하는 음악가가 작업한 극이었다. 생각지 않은 곳에 찾아가는 일. 덕질의 순기능 중 하나다.

많지 않은 경험으로 비추어보자면, 아동극 관람은 예측할 수 있는 줄거리와 예측할 수 없는 한 무리의 아이들을 견뎌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갔다. 최애에 관해선 무엇이든 감내할 수 있는 자가 덕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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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은 1980년대 탄광촌의 가정과 아이들의 삶을 그렸다. 주인공 순이가 창문을 열고 눈이 가득한 산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극이 시작되었다. 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겨울산의 풍경이 음악과 어우러졌다. 마음이 탁 놓이며 한없이 편안해졌다. 80년대 탄광촌이 배경이긴 하나, 나와, 동행인인 나의 어머니가 자랐을 때의 이야기와 다를 것도 없었다. 때문에 우리는 뭉클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쫓아갔다.


산만할까 걱정했던 아이들도 갈수록 극에 집중해서, 아동극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관람환경이 쾌적했다. 빠른 이야기 전개, 영상과 소품으로 다채롭게 연출한 장면들,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와 노래 등 극에 매력이 가득했기 때문이리라.


극이 진행될수록, 오히려 아이들과 함께 봐서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 중에서 친구의 아버지가 사고로 병원에 입원을 하던 장면이었다. 그때 담임 선생님이 극 속의 아이들에게 "탄이네 아버지 병문안 갈 사람?" 하고 질문했다. 그런데 그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배우들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관객석의 아이들이 큰 목소리로 "저요! 저요!" 하고 다투어 손을 들었다. 생각지 못한 풍경이었다. 와 나 울 뻔.. 아기천사들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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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무대의 풍경, 따뜻한 이야기, 맑은 음악을 들으며 이 순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참 행복했다.

무엇보다도 천재들이 만들어 낸 이 아름다운 작품을, 지금 이 순간 아이들이 보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현장에 내가 있다는 것이 참 벅찼다. 훌륭한 창작자들이 작품으로서 아이들의 마음에 꽃씨를 뿌리고, 그 꽃씨가 아이들의 마음속 땅에 떨어지고 있는 풍경을 실시간으로 지켜본다고 생각하니 울컥하도록 가슴이 벅차는 것이다. 아름답기 힘든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의 씨앗이 지금 내 눈 앞에서 뿌려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런 것이다. 또 울 뻔...


내 땅에도 그들의 씨앗이 잘 내려앉았겠지? 참 고마운 일이다. 아름다운 것을 통해 나는 조금 더 넓어지고 깊어지고 비옥해질 것이다. 내려앉은 씨앗들을 잘 보살필게요. 세상이 내게 준 빛을 갚는 건 그것뿐이겠지요. 그렇게 한번 더 마음을 꼭꼭 집어삼켰다. 극장을 나서니 하늘이 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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