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우양산.

by 릴리슈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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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을 돈 주고 사는가? 아니오. 사지 않습니다.

그랬던 내가 양산을 샀었다. 아주 더운 지방에 살 때의 일이었다. 길거리의 사람들이 양산을 쓰고 다니는 이유를 그늘에서 벗어나자마자 알게 되었던 날이었다.


기차역에서 양산을 샀다.

아주 작고 어두운 색이었다. 양산은 우산의 기능도 가지고 있었다.

여간해서 우산도 잘 들고 다니지 않았지만 아주 작고 가벼운 이 친구는 어디든 휙 던져 넣어 다니기에 부담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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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몇 년을 썼을까?

점점 녹이 번지고 낡은 기운이 역력하여 이거 어디 들고 다니긴 좀 그렇겠다 싶은 날이 마침내 왔다.

그래도 억지를 부려 들고 다니던 어느 날, 비바람 거센 날을 만났다. 몇 번을 엎어지고 뒤집어지는 우양산을 보며 '내가 좀 심했네_' 싶었다. 이제는 널 보내줘야지 하고 고심하며 인터넷으로 양산을 골랐다.

'이번엔 자동우산이면 좋겠네. 저번껀 일일이 손으로 펼쳐야 해서 번거로웠어.' '저번껀 브랜드여서 그런가, 튼튼하이 오래 썼지.' '우산 기능도 있어야겠지만 가장 일 번은 양산 기능이야.' 하며 무척 꼼꼼히 살폈다.


마침내 어느 브랜드의 우산을 주문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상자를 열어 꺼냈는데 이게 웬걸. 예상보다 통통하고 무거웠다. 자동 펼침 기능이 탑재된 때문인 건가. '에이 그래. 대신 비바람에 뒤집히는 횟수는 더 적겠지.' 하며 위로를 시도했으나

'그치만 얘는 우산이기 전에 양산이어야 하는 애야. 이렇게 무거워서야 뙤약볕에 이걸 들고 나서기나 하겠어?'

라며 반격에 나섰다. 저기요, 본인이 사셨거든요.


슬픈 예감은 빅데이터처럼 틀린 적이 없어 나는 그 우양산을 두어 번 들고는 그냥 현관 언저리 선반에 얹어두었다. 우산을 쓸 일이면 투명 장우산을 집었고, 양산을 쓸 만치 뜨거운 날이면 구석구석을 뒤져 작고 가느다란 옛 우양산을 굳이 꺼내어 길을 나서곤 했다. 그러니, 아. 새로 들인 이 우양산은 완전히 실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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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우양산은 아직도 여전히 현관 언저리에 있다.

어떤 날씨에나 길을 나서는 나의 눈에 밟히지만 무슨 날씨에도 함께 나서지 못하고 그 자리에 가만히 누워있다.

반짝거리는 이 친구를 한 번씩은 볕을 뵈 주어야 할 텐데, 내가 데리고 와 놓고는 손이 가지 않아 미안한 마음에 현관 앞에서 번번이 고개를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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