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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5일에는 원고를 정리해서 보내겠다. 라고 마음을 단디 먹었지만 안타깝게도 1월 5일 밤 11시가 넘어서야 작업에 착수하여 이제 겨우 40분 정도 지난 상황. 다행히도 일부 원고는 정리가 되어있어서 40퍼센트 정도는 작업이 진척된 상황이지만, 아 정말. 2020년의 나, 새해를 맞이했다고 급작스럽게 다른 사람이 되지는 않는 것이다. 이토록 한결같은 나란 사람.. 이 소나무같은 매력..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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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이었다.
생일이라고 딱히 1월을 막 좋아해본 적은 없다. 겨울을 좋아했지만 한국의 겨울에 대한 대단히 블링블링한 기억같은 것은 없다. 오히려 오래된 아파트의 짙은 시멘트 색이 더 짙게 느껴지는 계절이라는 인상 밖에는.
그래도 어무니가 해주신 7대3 비율의 찹쌀&멥쌀밥에 알맞게 익혀진 팥이 올라간 밥을 먹었다. 그리고 소고기 미역국. 소고기! 사랑은 창밖의 빗물보다는 미역국의 소고기 쪽이라고 생각한다. 아 어머니 정말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한창 나가 살 때 맞는 내 생일에는 내가 아니라 어머니가 최고 고생하신 거라고 집에 전화도 하고 막 감사하다고 인사도 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본가에 들어와서 막내처럼 칭얼거리며 살다보니 찹쌀밥에 소고기국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먹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근데 엄마밥 얻어먹으니 너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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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선물로 뭘 사주겠다는 혈육의 제안을 단박에 거절한 이유는 케이크 때문이었다.
몇 년 째 케이크를 너무 자주 먹어서 이번에는 안먹어도 될 법 한데 어릴 때 제 썽대로 못먹었던 케이크 분량이 아직 남아있어서 그런가 선물 대신 케이크로 달라고 했다. 쫄래쫄래 따라간 제과점에서 3호 케이크를 샀다. 3호. 3호가 중요하다. 케이크는 사이즈다. 그것도 생일날 아침에 빨리 먹어야하니까 전날 저녁에 갔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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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생일인데 뭐 필요한 것 없느냐는 혈육의 물음에 나는 지체없이
'그렇다면 내 방 청소를 도와달라' 고 말했다. 동대문 풍물시장의 축소판과도 같은 내 방을 잘 알고 있는 혈육의 눈동자는 당혹감으로 흔들렸으나 나는 한치의 동요없이 그 눈동자를 똑바로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오빠라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청소는 시작되었다.
중고서점에 팔 책을 추려 정리하고, 지난 제주여행에서 사온 오메기떡 전단지 같은 오래된 종이들을 버렸다.
"야, 이건 왜 아직도 갖고 있는거야?"
"아, 그거 다들 맛있게 먹길래 다음에 또 그 집에서 사오려고."
"아~ 그럼 사진으로 찍어두렴 동생아."
뭐 이런 걸 가지고 있냐는 한심하고 걱정스러운 표정에서 세상 온화하고 흡족한 표정이 된 혈육이 나에게 다정하게 전단지를 건넸다. "찰칵."
"이건 써?"
"아..이리 줘.. "
"이거는 잘 안쓰지 않니? "
"아니야 그렇지 않아, 내가 치울께.."
실랑이가 끝나면, 나는 끝까지 살아 남아 책상위에 놓여진 물건들을 아름답고 의미없이 재배치했다. 그럼 그런 나를 곧 발견하고 작은 한숨을 쉬는 오빠가 그 옆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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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가 끝났다.
영영 책상위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던 스피커 한쌍이 책상 아래로 이사를 갔다. 분명 공부했으되 영 낯선 영문법과 중국어책, 오만장의 출력물들이 겨우 비워진 책장 한켠으로 옮겨졌다. 오래된 영수증과 빈 에센스통, 제 수명을 다하고 심지어는 녹아내리기 시작한 드라이기는 쓰레기통에 담겼다. 온갖 것으로 수북하던 책상은 여백을 넓혀가더니만 끝내 하얀 제 낯빛을 완전히 드러냈다. 저 아래 펼쳐놓은 조그만 좌식책상에 겨우 몸을 얹어놓았던 노트북과 아이패드를 드디어 텅빈 책상위에 올려놓을 수 있었을 때, 우리는 조그맣게 탄식했다.
"아! 드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