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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슈슈 Jul 02. 2021

잘 달렸으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데도 아직 자전거가 익숙지 않다.

빠른 속도를 무서워하는 등, 안전에 대해서는 다소 쫄보인 편이라 그런지 자전거 드리프트 이런건 못한다. 

18인치 귀여운 바퀴에도 기어는 중간에 놓고, 계란 한판 매달고 가는 할아버지처럼 느릿하게 걷듯 달리며 좌우를 쉴새없이 살피며 가는데. 이런 나의 등 뒤에서 오토바이가 내 어깨빵을 할 기세로 바짝 붙어 잽싸게 지나가버리는 등의 일이 생기면 무섭고 화가 난다. 내 일생의 목표인 무병자연사를 방해하려는 악의 무리들..

그들을 향한 나쁜말을 잠시 읊조리다, 한편으론 '나는 왜 이렇게 쫄보일까, 좀 더 대범한 드라이빙을 할 수는 없늬? 남들은 잘만 달리더라' 하며 나를 탓하는 일도 잊지 않고 부지런히 해낸다. 


오늘도 그렇게 '아, 참 깝깝시럽구만.' 하다가 허리를 쭉 펴고 핸들을 잡은 팔을 쭉 뻗었는데, 

뭐지, 이 편안한 기분?

시야가 넓어진다. 내가 달리는 길 위의 교통상황이 한 눈에 보인다. 

멀리서 다가오는 차, 오른쪽에서 걷는 보행자, 왼쪽에서 들어오려는 자전거.. 

잘 보이니 예측이 된다. 마음이 편해진다. 한결 여유롭다.


이윽고 약간의 오르막길을 만났다. 

노쇠한 자전거와 함께 가려면 내가 적극적으로 힘을 내야 해서, 몸을 구부리고 체중을 앞에 실어 발을 힘차게 굴렀다. 몸을 웅크렸더니 옆이고 뒤고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 정면의 화각도 좁아졌다. 앞만 보고 달린다. 힘이 집중된다.

끼긱끼긱_ 

자전거와 나는 힘을 합쳐 귀여운 오르막길을 올라냈다. 히유.


다시 만난 평지, 가슴을 활짝 펴고 팔을 한껏 뻗어봤다. 마음이 헐렁해졌다.

다시 논두렁을 유유히 달리는 영감님 같은 기분이 됐다. 

'바람이 좋구만.'



_

매일, 매순간에 알맞게 등을 펴서 넓게 바라보기도 하고, 귀여운 오르막들은 몸을 웅크려 힘차게 달려 넘어가보기도 하고,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매일 달라지는 각도의 지면들을 알맞은 자세로 달려, 잘 포장된 평지나 귀여운 오르막, 그리고 없었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한번씩 나타날 좀 부담스러운 오르막까지 잘 달려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내게 오는 길들을 잘 이해하고, 알맞은 태도로 다양한 길들을 달려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길의 끝엔 뭐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깊게 생각하는 대신, '이렇게 달리니까 근육이 남겠다!' 하고 다소 천진난만한 마음으로 달려보고 싶다. 



아, 이렇게 글을 쓰고 나니 '파도를 타는 일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언젠간 파도를 타러 가야지. 

그때까지는 지면을, 내 일상을 잘 타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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