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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슈슈 Jul 03. 2021

낮말은 쥐가 듣고 _ 1

_

리저너블한 가격의 물건을 즉흥적으로 구입하기를 좋아하는 맥시멀리스트 욜로족 아버지는 시대를 잘못 타고 난 게 아니라 그냥 경증의 호더였다.

또한 그는 종목을 가리지 않고 두루 섭렵해 온, 범지구적 스펙트럼의 취향을 가진 사람이었다.

(아. 몇백만원짜리 그림도 들였으니 '리저너블한 가격'에는 줄을 찍찍 그어야한다.)

('사람이었다' 에서 '사람이다' 로 수정. 아쉽게도 사람이 소나무처럼 한결같아 아직도 그러기 때문.)


거의 모든 구입물이 가정을 시끄럽게 만들곤 했지만, 단연 으뜸은 식물이었다. 

살아있는. 식물.



_

식물을 좋아하는 어머니가 화분이라면 질색 팔색했던 까닭은, 

그는 그저 '사는 자'였기 때문이다. 일단 집에 들이고 나면, 그는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마치 그의...

('마치 그의 가정처럼' 이라고 썼다, 내 마음의 강같은 평화를 위해 생략. 찡긋.)


돌보아지지 않거나, 그의 식대로 돌봄당한 식물들 그 모두는 가엽기 이전에 아버지의 분신이어서,

가장이었던 어머니는 남편이 집에 없을 때도 그가 들인 식물을 보면 화가 났다고 했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 

가난한 작은 집 베란다에 꽉 들어찬 난들을 보며, 

'너희는 이렇게 곱고 예쁜데 어떻게 우리집엘 왔니.' 하다가, 가격을 듣고는 기가 차곤 했다.

'니가 10만원이라고? 뭐? 너는 화분만 10만원이라고?' 



_

그렇게 아버지가 사오는 거의 모든 물건들과 사투를 벌이는 세월이 흐르고..

어머니의 어떤 엄명, 어명, 불호령, 사자후에도 변함없이, 말 못하는 식물들은 줄을 서서 우리집에 들었다 떠났다. 물이 없어서, 물이 많아서, 해가 적어서, 해가 많아서.

그리고 몇 주 전, 또 하나의 식물이 들어왔다. 제라늄 아니고 뭐더라. 하여튼 그 꽃을 사왔는데, 작년에 어머니와 내가 예뻐하던 꽃이었다. 


그러면 이 모녀가 길었던 고난의 역사를 잊고 예뻐할만도 한데, 얘가 하필이면 식인꽃이라도 되는 것처럼 거대하고 울퉁불퉁 못생겨서 (아, 역사를 못잊어서 그래보였을까? 아니야.. 우리 아버지 취향 알잖아.. 아빠야.. 우리 아빠.. 예쁜걸 사올 리가 없어...) 나와 엄마는 아버지가 잠든 밤에 한숨을 푹 쉬었다. 하아...



_

"결자해지입니데이! 고마 아버지가 들인 알라들은 이제는 마, 고마 아버지가 책임지쏘!"

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그리고 아버지는 사투리 안씀. 그냥 서울사람임. 그냥 내 다짐이 이렇게 단단했다 마 그정도로만 알아주쏘!)

절대로 신경쓰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그것도 사실 과습이 더 안좋은 꽃인걸 알아서 약간 마음 놓고 못된 척 굴어봤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나 : 우왁!

어머니 : 왜왜?

나 : 아니 얘가!

'모든 꽃이 흙에 머리를 처박고 꼬꾸라져있음'

어머니 : 우왁!


아 진쫘! 하고 싱크대로 들고가서 물을 먹이는데 알라들이 고마 마 물을 쪽쪽 빨아땡겨싸서 내가 마 안쓰러븐데 마 내도 씅질도 나고.. (화가 나서 사투리)

어쩜 이렇게 한결같이 책임을 안지나, 그리고 그걸 또 왜 내가 챙기고 있나 싶어서 성질이 났다.

그걸 애한테 풀면 안되는데, 꽃들한테 그랬다.

"야, 너네는 너네 아빠한테 가. 너네 아빠한테 물도 달라그러고 돌봐달라그래. 난 너네 아빠 아니야."

꽃들은 뭐라 대꾸가 없었다.



_

그리고 한 주가 더 지났다. 이번에는 잎들이 노랗게 말라갔다.

"아 거 참, 잎이 다 말랐잖아."

그 꼴을 못봐서 또 싱크대로 데려갔다. 쌀쌀맞게 물만 주고 치우려다, 노란 잎을 내버려두기도 싫어서 가위로 정돈해주었다. 그리고는 또 진심을 다해 말했다.

"야, 너네 아빠한테 물 달라그래!"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은 내일 써야지 쿨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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