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최애, 타오르다.
**스포일러 있읍니다**
_ 누구나 가슴 속에 최애 하나쯤 품고 사는거 아니에요?
연대기별로 최애가 존재했던 내 삶을 돌아보았을 때, <최애, 타오르다.> 라는 제목에 설레지 않을 수 없다.
‘눈부시게 빛나는 최애를 덕질하며 생기는 여러가지 에피소드인갑다.’ 내 멋대로 상상하고 책을 펼쳤다.
그리고 첫 문장.
“최애가 불타버렸다. 팬을 때렸다고 한다.”
맞은 건 팬이 아니라 내 쪽인 듯 얼얼한 기분으로 글을 이어 읽었다.
남들 사는 만큼, 아니 살아내기 위한 최소한의 것들도 할 수 없는 상태의 아카리는 고등학교 2학년이다.
가족들에게는 따뜻함을 기대할 수 없고, 어떤 일에도 빼어남이 없는 아카리는 학업에도 집중하지 못한다.
다만 최애의 CD를 사고, 콘서트를 가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몰두할 뿐이다.
그러나 최애는 팬을 때리고, 은퇴를 발표한 뒤 마지막 콘서트를 하게 되는데.
_ 아카리한테 그르지뭬!
“왜 아무것도 안했니?”
“또 그런 변명이나 하고.”
학교를 중퇴하고, 아르바이트도 그만 둔 아카리에게 던져지는 가족들의 말은 화살같고 한숨은 먼지처럼 집안에 쌓인다. 내가 나를 지배하려면 기력이 필요하지만 아카리에게는 오직 아무것도 안할 때 달라붙는 새까만 초조함을 느낄 기력밖에는 없다. 그런 아카리에게 덕질은 단순한 취미가 아닌, 자신을 ‘척추’ 처럼 지탱하는 행위였다.
지나치게 무거운 삶 앞에서 손가락 하나 움쩍거릴 힘이 없는 때가 있다.
그리고 혼자서는 도저히 지나갈 수 없을 것 같은 검고 기다란 시간 앞에서 나를 움직이게 하는 빛이 뜬금없이 나타날 때가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족일수도, 친구일수도 있는 그 빛이 아카리에게는 최애였던 것 뿐,
최애가 있어 아카리는 ‘척추’ 밖에 남지 않은 삶이라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니까 아카리한테 “콘서트에 갈 여유는 있으면서.” 같은 말 하지마..)
_ 시절의 빛
마지막 콘서트 후, 최애가 없다는 감각을 처음으로 느낀 아카리는 ‘성불 못 한 유령처럼 흔들’리기 시작하고, 연예계를 떠난 최애가 남긴 모든 것은 이제 과거로 남았다는 사실을 통해 살을 깎아 뼈를 만들 듯 자신의 생활을 버리고 최애를 응원하는데에 모든 것을 집중했던 자신의 삶을 인식하게 된다.
자신을 부수려는 듯 집어던진 면봉상자 속 면봉을 주우려 기어다니다 아카리는 문득 생각한다.
‘이족보행은 맞지 않았던 것 같으니까 당분간은 이렇게 살아야겠다. 몸이 무겁다. 면봉을 주웠다.’
척추(최애)가 전부였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삶에도 생을 겪으며 일구었던 살집(자신만의 삶)이 있다는 걸 알아차린 아카리는 비로소 자신이 살아온 삶의 결과를 오롯이 바라본다. 척추가 빠져나가 몸을 일으킬 수는 없지만 당분간은 이대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기는 듯 살아가도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며 살집을 붙이고 힘을 붙여가다보면 일어서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일어서 걷다 보면 또 세상이 캄캄해 보일 때가 있겠지만 그 때엔 또 그 때의 빛이 나타날 것이다. 그렇게 시절마다의 빛을 부목처럼 갖다 대어, 어둔 터널을 걸어 지나기도, 어느 때는 뛰어 지날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_ 덕후라면 한번쯤
덕후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책을 읽는 내내 간헐적으로 급소를 맞는 기분이었다. 머글에 가까운 라이트 덕후임에도 뼈 없는 순살 치킨이 되어가던 중, 글쓴이 본인이 덕심 깊은 이가 아니고서야 이런 글을 쓸 수 없다는 데에 생각이 다다르자 조금은 서글픈 유대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최애를 향한 계산없는 애정, 현실과 덕질 사이에서의 갈등,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현실자각타임에 넘실대는 자괴감, 심지어 과거가 된 최애를 바라보며 떠올랐을 분노와 무력감에 매몰되지 않고, 그 복잡다단한 감정들을 한켜한켜 버혀내어 묘사하는 집요함과 섬세함, 끝내 주인공을 통해 나타내는 성장에 대한 열망과 생에 대한 애착을 보여주는 작가에게 꽤 놀랐고, 작지 않은 애정과 기대를 갖게 되었다.
가슴 속에 최애 하나쯤은 품고 산다면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책.
*창비 서평단으로 가제본을 받아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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