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냈어요

덕후의 힘

by 릴리슈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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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평생을 잡았다 놨다 했던 애증의 악기, 기타.

더 이상 미룰 핑계가 없는 백수의 삶이 기타 학습에 대한 배수의 진이 되었다. 그러나 몇 걸음 뒤에 급류가 콸콸 흘러넘쳐도 당장 이 손가락 아픈 건 아픈 거라, 연습을 하다 보면 곧잘 그만두고 싶어 졌다.

'치고는 싶은데 연습하기는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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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최애가 기타인가 베이스를 배우던 때의 이야기가 있다.

빨리 더 연습하고 싶어서, 집에 돌아와 방에 들어갈 새도 없이 신발장 옆에 앉아서 연습했다던.. 그러다 잠들었다던가. 생각만해도 졸커 존경스럽..


고통없이 열매있었음 싶은 도둑놈 심보를 장착한 내게, 저 이야기는 진실된 성찰의 목소리를 끄집어내준다.

'야이 양심도 없는 것, 연습을 안하면 무슨 수로 잘 치게 되냐'

그럼 주섬주섬 기타를 집어 들게 되곤 했지만, 가끔은 자극이 되지 않는 날도 있었다.


자극이 안된다고? 최애의 감동실화에 감응이 없다는 건 덕후의 순수성을 잃어버린 것과 같음이다.

'그렇다면 너는 진정한 덕후가 아니니라..' 저기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묵직한 울림이 들려온다. 아. 정신이 번쩍 든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허둥대며 기타를 잡고 깊이 참회한 다음, 정한 마음으로 코드를 짚는다. 다른 건 몰라도 덕후력에 스크라치가 나는 것은 견딜 수 없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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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력에 스크라치라니.. 햄보칼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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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덕후가 되고저 울며 기타를 잡았다. 연습한 날엔 달력에 동그라미를 쳤다. 동그라미는 오늘로 13개가 되었고, 나는 <걱정말아요 그대>의 1절을 악보 없이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풍악을 울려버렷!


이것이 바로 덕후의 위대함, 덕질의 유용함이다. 덕후의 자존심이, 한평생 코드 하나 제대로 외우지 못했던 기타를 이렇게까지 할 수 있게 만들었다구요. 덕질이 이렇게 유익합니다 여러분. 그러니 하루 세 번 덕질하세요. 단점은 기타 연습 시간보다 덕질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다는 것 뿐이랍니다.


뭐, 어쨌든 좋다. 어찌 됐건 조금 해냈으니까. 이렇게 나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 최애에게 모든 영광을 돌리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정진해 나갈 것임을 최애에게 또한 맹쎄맹쎄! 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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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쎄맹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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