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과 현생의 시나몬롤

살림살이 나아졌는가베

by 릴리슈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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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가득 핀 봄이다. 그런데 이렇게 추운 봄날이 예전에 또 있었던가? 얇은 패딩을 입고 나왔는데도 춥다. 영상 8도. 게다가 진작 흐렸던 하늘로부터 슬슬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큰 창이 있는 카페에 앉아 바깥을 쳐다본다. 채도가 뚝 떨어진 바깥 풍경을 오도카니 혼자 바라보고 앉았는 이 정서가 익숙하다. 이게 뭐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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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건너에서 지낼 때, 일터가 이런 모양이었다. 커다란 통유리가 있어 맑은 날엔 햇볕이 사무실 안을 가득 채웠고, 비 오는 날이면 비가 떨어지는 모양을 원 없이 쳐다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의 끝에는 카페가 있었다. 평소에는 그냥 풍경 속에 묻혀 있던 사무실 맞은편의 카페가, 비 오는 날이면 유난히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곤 했다. 딱히 커피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래서 비 오는 날엔 우산을 펼쳐 들고 카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곤 했다.


그 카페에선 주로 베이글을 먹었다. 그런데 그 집의 시나몬롤이 유독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시나몬롤은 정말 맛있는 것을 먹어본 적이 별로 없어, 어딜 가서 굳이 사먹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집 시나몬롤은 그렇게 맛있어 보였다. 그래서 하루는 용기를 냈다.

'오늘은 한번 먹어볼까?'


나에게 온 시나몬롤은 단단하고 도톰하게 잘 말려 있었다. 노릇했고 달콤하며 촉촉했고 큼지막했다. 너무 질기거나 너무 바삭하지도 않았고, 단맛의 정도와 계피향의 정도가 모두 알맞았다.

'야, 정말 맛있다.'

엄마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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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없었으면 엄마 생각이 안 났을 텐데. 너무 맛있어서 엄마 생각이 났다. 시나몬롤을 좋아하는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빵을 좋아하는데, 빵의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다른 태도를 보이곤 했다. 그중 시나몬롤에 대해서는, 뭐랄까 케익에게나 보이는 진중함이랄지 신중함 같은 것을 보이곤 했다. 말려있는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칼을 대는 모습이 그런 것이었다. 시나몬롤 앞에서 침착하고 고요하게 설레어하는 엄마를 보며, 나는 시나몬롤이 엄마를 더욱 우아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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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비가 오는 오후가 되면 우산을 펼쳤다. 카페의 무거운 문을 밀고 베이글 대신 시나몬롤을 주문했다.

내 두 주먹을 뭉친 것보다 훨씬 큰 갈색빛의 시나몬롤_ 윤기를 뽐내고 있지만 연약한 하얀 아이싱을, 연한 살결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는 흑갈색 설탕 필링의 머리 끝을 조심스레 쳐다보았다. 큰 결심을 하고 나서야 칼을 대어 먹기 좋게 도막을 낼 수 있었다.


그렇게 나도 엄마처럼 시나몬롤 앞에서 조금 신중하고 차분해졌다. 그러고 보면 시나몬롤은 내게도 좋은 친구였군. 시나몬롤을 사고 가져와서 감상하다 침착하게 썰어 먹는 동안에는, 나와 닮은 엄마 아니 내가 닮은 엄마를 그 속도대로 찬찬히 떠올릴 수 있었다. 그렇네, 시나몬롤은 정말 좋은 친구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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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엄마와 한 집에서 지지고 볶으며 매일을 함께 살고 있어, 타지에서 시나몬롤을 보며 엄마를 떠올리던 시절이 마치 전생 같다. 이제는 시나몬롤을 사들고 집에 가면 엄마가 있고, 그걸 설레는 표정으로 자르는 엄마를 볼 수 있다. 아무래도 이 지금이 전생보다는 더 괜찮은 것 같다.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라는 질문에, '그런 것 같다'고 대답할 수 있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조금 대견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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