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도.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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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생 쯤 되어보이는 아이들이 반바지를 입고 돌아다닌다. '안춥나? 아직 오월초순인데.'
한겨울에 맨다리로 반바지를 입고 심부름을 다니거나, 스타킹 없이 교복 치마를 입고 다니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건만. 지금 나의 너덜너덜한 추위 방어력으로는 영 실감이 나지 않는다.
영 추워서, 아이들을 한번 더 쳐다본다. 아킬레스건이 훤히 드러나 있다. '양말도 안 신었나 봐.'
가만히 생각했다.
그래 그랬지. 나도, 내 친구들도, 그 아이도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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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이었던 아이는 아킬레스건이 예뻤다.
자기 아킬레스건이 예쁘단 걸 알고 있었던 그 아이는, 그래서 그랬을까 반바지의 계절을 좋아했다.
반바지의 계절에는 아이의 생일도 있었다.
한여름, 무더운 여름. 여름.
태어난 계절을 닮는 건지 아이는 정말로 여름 같았다. 더 이상 푸를 수 없는, 그 이상 더 온몸을 뻗쳐낼 수 없는,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에 있는 힘껏 몸을 떠는. 한창때의 잎사귀 같았다. 싱그러움과 생명력이 가득한 아이였다. 어둡고 눅눅했던 내가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초록색이었다.
우리는 영 달랐지만 꽤 잘 맞는 구석도 있어 꽤 긴 시간을 공유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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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리고, 우리는 그다지 좋지 않게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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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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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오래 지났다.
오래도록 좋지 않은 기억이었는데. 이렇게 글도 쓰고 하는 걸 보니 많이 바스러지고 또 흩어졌는가 보다. 아니면 그 시절 한창 들었던 사카모토 선생님의 연주를 오랜만에 다시 들어서 그런 건가. 음악이 그때의 좋은 기억만 골라 불러와서 그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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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같이 아름다운 이 계절을 틈타, 그 기운을 빌어, 한없이 너그러운 사카모토 선생님의 피아노 소리에 기대어, 어리고 또 어렸던 우리들을 용기 내어 떠올려본다.
학교 운동장 한켠의 벤치에 나란히 앉아 소근소근, 키득키득하는 나와 아이가 보인다.
이제 어른인 내가 무슨 말이라도 건네야 하나 싶어 잠깐 생각해봤는데, 예뻐서 그냥 가만히 지켜보았다.
'예쁘지? 그래, 예뻤어. 그러니 예쁜 것만 기억하고, 각자 예쁘게 잘 살자.'
아이들이 예뻐서. 아이들 대신, 나만큼 나이 든 아이를 불러내 아이들을 가리키며 조용히 말했다.
Ryuichi Sakamoto. <Aqu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