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취미

by 소란화

우연히 <수유천>을 접한 후부터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계속 보게 되었다. <소설가의 영화>, <여행자의 필요>, <밤의 해변에서 혼자>까지.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등 보고픈 리스트도 미리 만들어 두었다. 이유는 모른다. 그냥 그가 만든 영화들이 내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그 감독의 개인사를 아주 무시하고 그가 만든 작품들을 감상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개인사가 어땠건 간에 그가 만든 작품들은 그의 삶과는 또다른 이야기들을 마구마구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술은 일상과 무관하지 않으면서도 무관한 척 할 수 있는 일종의 특권적 장소에 있는 거니까.


홍감독의 영화를 보다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술마시고 밥먹고 차마시고 이야기 나누고 산책하고 먼산보고 드러누워 자고 그러다가 다시 일어나서 또 같은 일을 반복하고. 그냥 그런 것들이 내 눈앞에 펼쳐지고 한 장면 쯤 집중 안하고 흘려보내도 영화를 따라가는데 무리가 없는, 그런 느리고 소소하고 평범한 속도에 묘하게 중독이 되어버린다. 홍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 그토록 충격적이고 신선하다는데, 아직 거기까진 갈 생각도 못했지만 지금 이대로도 좋다. 그가 데뷔 후 1년에 한 편 씩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그의 작품은 도합 20여편은 될 것이다. 아직 열댓편이나 더 남아 있으니 든든하다. 요즘 홍감독의 영화를 볼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주중을 산다. 주말이면 홍감독의 영화와 갓 내린 커피를 즐긴다. 불륜으로 말이 많았던 감독과 그 사랑의 상대인 배우가 함께 제작한 영화를 감상하며 육아 스트레스를 푸는 여느 평범한 기혼녀라니. 삶은 참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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