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며느라기 체험판

소심한 반항 일기

by 소란화

나는 페미니즘을 공부한 삼십대 여성이다. 그러나 살면서 직접적으로 '남자는 하늘이오 여자는 땅'을 체감한 적은 별로 없다. 개인적으로 겪었던 성폭력을 제하고, 공부하고 싶었던 것을 여자라는 이유로 못했다거나 가고 싶던 곳을 여자라는 이유로 제지당했던 적은 전무하다. 나는 늘 '나'로 살았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던 이유 역시 성차별 이슈에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성폭력의 기억을 페미니즘의 언어로 톺아보기 위함이었다. 그런 내가, 결혼 후에야 '남자는 하늘이오 여자는 땅'을 체감할 줄이야! 어디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남편은 결혼 전에 자기 나름 경고 아닌 경고(?)를 했다지만, 미리 예상했어야 했다. '제사가 있다'는 말 한마디로 모든 걸 예측할 순 없었겠지만, 그럼에도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두었어야 했다. '최장 황금 연휴'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붙었던 이번 10월 추석 기간, 나는 남편의 집에서 인생 첫 '며느라기' 신고식을 치렀다. 그래봤자 '체험판'에 불과했지만, 여운은 상당히 짙고 길었다. <체험판>이라 함은, 아직 살림에 손이 익지 못한 나를 위해 어머니와 시가 어른들이 적극 '배려'해주신 덕에 그나마 수월한 편이었음을 말한다. 돌이켜보면 실질적으로 내가 한 일은 없다. 미나리를 다듬지도 않았고 전을 부치지도 않았고 과일을 깎지도 않았고(TMI로 나는 정말로, 정말로 칼을 잘 다루지 못한다) 하다 못해 상을 닦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며느리로서 맞이한 이 첫 추석의 신선한 충격을, 두고두고 기억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큰 이변이 없는 한, 이번의 충격은 계속 반복될 것이므로. 모양과 색만 살짝씩 달리한 채. 거듭, 거듭, 거듭.


제사가 끝나고, 밥을 먹기 위한 상이 차려졌다. 기다렸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남자들이 앉았다. 나이 많은 남자, 나이 어린 남자, 나이 어중간한 남자. 누구 하나 머뭇거리지 않았다. 여자들은 앞치마를 매고 부엌에서 음식을 나르거나, 아이를 안은 채 엉거주춤 집안 아무데서나 서성이고 있었다. 남자들은 수저를 들고, 밥을 떠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전날부터 오늘 새벽까지 여자들이 부지런히 썰고 무치고 데치고 삶고 지진 것들을 입안 가득 넣고 씹고 삼켰다. 챱챱챱. 음식 먹는 소리만이 집안을 가득히 채웠다. 누구도 여자들에게 자리에 앉아 밥을 먹기를 권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차나 커피도 권하지 않았다. 그렇게 남자들이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여자들은 기다렸다. 마침내 마지막 남자까지 수저를 내려놓았을 때, 다들 약속이나 한듯 자리에서 일어나 여자들에게 상을 '넘겨' 주었다. 여자들은 부엌에서 자기가 먹을 밥을 퍼 가지고 왔다. 나는 남자들이 먹고 난 상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곳곳에 음식 흘린 자국, 국물 자국이 너저분하게 남아 있었다. 여러 벌의 젓가락이 스치고 지나간 반찬들이 그 자리 그대로 남아 있었다. '먹자, 너도 밥 먹어.'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문득 배가 고파왔다. 나는 자동기계처럼 저절로 부엌으로 걸어가 밥솥에서 밥을 퍼가지고 나왔다. 그러다가 다시 상 앞에서 우뚝 멈추어 섰다. '먹어, 먹어. 얼른 먹고 성묘가자.' 누군가가 내게 다시 말했다. 아마도 남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였는지 정말로 확실히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 내 시야와 머릿속을 온통 채우고 있었던 건 바로 그 너저분하고, 역겹고, 더러운 밥상이었기 때문이다. '나 안 먹을래.'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왔다. '뭐라고?' '나 안 먹을래요.'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향했다. 여러 벌의 '눈'들이 앞치마를 맨 '새아기'에게 쏠렸다. '와? 속이 안 좋나?' 어머니가 다정한 목소리로 물어오셨다. 그래, 우리 어머니는 늘 저렇게 다정하시지. 다정하고 따뜻하고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나의 시어머니. 내게도 항상 생선 살을 발라주시고, 내가 행여나 억울해할까 될 수 있으면 험한 일은 시키지 않으려 애쓰시는 우리 좋은 어머니. 그러나 아무리 좋은 시어머니가 있더라도, 그런 어머니의 배려가 있더라도, 이 더러운 상 앞에서는, 다른 건 다 소용이 없어져 버리더라. '네, 속이 안 좋네요. 제가 알아서 먹겠습니다. 먼저들 드세요.' 사람들은 그제야 안심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각자 하던 일로 돌아섰다. 누군가는 고픈 배를 채우려 수저를 들고, 또 누군가는 담배를 태우러 밖으로 나가고, 누군가는 화장실을 가고. 그러나 어느 누구도 내게 똑바로 묻지는 않았다. '왜, 뭐가 맘에 안 들어? 이 상황에 대해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그런거야?'


나의 소심한 반항이, 그 순간의 반항이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읽혔을지에 대해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솔직히 알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저 그때 밥을 안 먹길 참 잘했다는 마음 뿐이다. 그러나 앞으로가 문제다. 앞으로도 내 눈 앞에서 거듭 반복될 이 명절의 '훈훈한' 풍경이, 그 풍경 속에서 매번 '안 먹을래요'라고 말하는 내 모습이, 나는 진심으로 두렵다. 언젠가는 나도 배가 고플 것이고, 배고픔에 못 이겨 수저를 들 것이고, '페미' 특유의 '유별나고' '예민한' 문제의식 따위 저만치 시원하게 던져버리고 맛있는(배고프면 뭔들 맛있지) 나물과 전과 고기를 마구마구 탐닉해버릴지도 모른다. '새아기'에서 점차 '헌아기'가 되어가는 동안, 나는 무얼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우리 집 전통이야' '뭐 그리 큰 의미는 없으니까 알아서 적응하면 돼' '너무 그렇게 매사에 의미부여를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좋게 좋게 생각하자 여보야'라고 말하는 남편 앞에서, 내가 대체 어떠한 방식으로 '반항'할 수 있을까? 소심한 반항일지언정 거듭, 거듭 이어갈 수 있을까?


자매품: '아가씨'께 커피 말아드리기. 참고로 나와 아가씨는 동갑이다. '도련님'께 사과 갖다드리기. 참고로 '도련님'은 방에서 컴퓨터를 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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