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푸드

('햄버거'냐 '죽'이냐, 결국 다 괜찮다)

by 소란화

한 외국인 친구가 있었다. 그는 한국에 막 도착해 내게 말했다. "어디 속 편해지는 음식 파는 곳 없을까?" 장시간 비행을 해서 속이 느글거리고 불편하다고 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본죽(광고 아님!)을 떠올렸다. '와, 나 천재.' 내 천재적인 감각(?)에 의지해 도착한 본죽 집에서 떡하니 대령한 소고기 야채죽을 앞에 놓고 친구는 구역질에 가까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왜 그래?" 그가 아주 의아하다는 말투로 내게 답했다. "아니, 내 말은, 햄버거나 샌드위치 같은 거였는데..."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에겐 '속 편해지는 음식'이 소고기 야채죽이 아니라 '햄버거'일수도 있다는 것. 살면서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누군가'의 고유한 식성. 그때만큼 내 친구가 '외국인'처럼 느껴진 적은 없었다. 아마 그 역시, 죽을 앞에 놓고 어서 들라고 보채는 내 모습에서 엄청난 이질감을 갖지 않았을까. 훗날 함께 어느 프랜차이즈 버거집에 갔을 때, 세상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 "소울 푸드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야." 그래서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소울 푸드는 무엇일까. 한국인이니까, 김치? 그런 건 너무 재미가 없다. 김치는 훌륭한 식품이지만 내게는 소울 푸드일 수 없다. 자고로 소울 푸드란, 내가 죽기 직전에도 꼭 먹고픈 정도로 애뜻한 음식이어야 한다. 그러고 보면 나의 소울 푸드는 반드시 한국 음식만 있는 게 아니다.


대표적으로, 밀크티. 내가 밀크티님과 영접한지 어언 10년이 넘어간다. 처음엔 우유 냄새가 풀풀 나는 텁텁한 차를 왜들 그렇게 찾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밀크티를 유달리 좋아하는 한 선배를 만났다. 그녀는 또래들에 비해 빠듯해 보였지만, 한 잔에 2000원 하는 밀크티는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그 귀한 밀크티를 꼭 한 잔 더 사서 내게 안겨주곤 했다. 언젠가는 너도 이 쌉쌀하고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의 진가를 알게 될 거라며. 나는 그녀와 함께 공부하고 과제하고 놀러다니는 동안 수많은 밀크티잔을 비웠다. 그녀가 그녀의 길을, 내가 나의 길을 걷게 되어 서로 연락이 아주 끊기고 난 후에도 나는 종종 아무 가게에서나 밀크티를 주문했다. 바리스타가 밀크티를 건네줄 때는 꼭 선배에게서 잔을 받듯 깍듯한 태도가 되곤 했다. 어려운 와중에도 후배와 함께 좋은 맛을 나누고, 또 즐기고 싶었던 선배의 도량과 배려심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행복해지곤 했다.


단순히 맛이 좋아서, 고픈 배를 든든히 채워주어서가 아니라, 먹으면 마음까지 차오르는 기분이 들게 만드는 음식. 긴장과 피로를 풀어주고, 세상 어디에 있든 내가 있는 바로 그 곳을 내 집으로 만들어줄만큼 포근하고 안전한 기분이 들게 하는 음식. 그런 게 소울 푸드라면, 70억 인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저마다의 소울 푸드를 갖고 있다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햄버거도 좋고, 소고기 야채죽도 좋고, 밀크티도 좋고, 김치부침개도 좋고, 치킨과 맥주, 츄러스와 핫초코, 깜빠뉴와 스팀 밀크, 로제 파스타와 스파클링 와인, 어묵과 순대, 똠양꿍과 파인애플 볶음밥, 비건 스테이크와 채소찜도 좋다. 다만 예전의 나처럼, 나의 소울 푸드가 상대에게도 소울 푸드일거란 '천진한 오만함'만 조심한다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 살 빼고 싶다는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