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살 빼고 싶다는 당신에게
(*주의: 식이장애가 있는 분들은 트리거가 될 수 있어요)
1월 1일이 벌써 일주일 전이다. 요즘은 무식하게 살만 빼겠다는 사람들보다, 요가나 PT, 필라테스 등으로 건강과 몸매 둘 다 달성하려는 결심러들이 늘었다. 아침 건강프로그램부터, 유튜브 쇼츠와 틱톡, 네이버 배너까지 어디에서나 새해 결심으로 '다이어트'를 꼽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제는 현대 한국의 엄연한 '전통'이 된 트렌드다. 그런데 왜 걸고 넘어지냐고?
혹시, 거식증이 정신질환 중 사망률이 가장 높은 병이라는 걸 알고 계신지? 우리가 아는 식이장애 중 가장 '눈에 띄는' 질환 하나를 꼽자면 단연 거식증을 들 수 있다. 아예 아무 것도 먹지 않으려고 하는 병. 식이장애 스펙트럼에는 폭식과 구토, 과도한 운동강박 등 다양한 증상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대중에게 가장 충격적으로 어필하는 이미지로는 아무 것도 먹지 못해 피골이 상접한, 거식증 환자의 뼈만 남은 몸일 것이다. (놀라운 건, 거식증 진단을 위해 반드시 몸이 말라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겉보기엔 뚱뚱해보여도, 몸무게를 떠나서 먹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성 그 자체가 거식증 진단의 중요 척도가 된다.)
나는 거식에 가까운 식이장애를 진단 받은 적이 있다. 시작은 남들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나때는 한창 스키니진이 유행했는데, 내 다리도 스키니진에 무리없이 쏙, 들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게 다였다. '뚱뚱한 다리는 보기 좀 그렇잖아?(정확히 이런 워딩으로 생각했다)' 처음엔 그저 식사량을 조금씩 줄여가는 것으로 내 할 일을 다 했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게 신기했다. '어, 줄었네?' 1키로, 3키로. 저울에서 줄어가는 몸무게는 내가 뭔가,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이상한 성취감을 주었다. 재미삼아 걷기 시작했다. 집 앞, 교정, 상점에서 역까지, 매일 30분, 1시간, 2시간, 2시간 30분... '어, 이게 뭐야?' 8키로. 거울 속의 나를 보았다. TV에서만 보던 그 '다리.' 젓가락처럼 얇고, 건드리면 쉽게 부러질 것 같은 '예쁜' 다리. 다리 뿐만이 아니다. 배는 거의 없는 것 같이 등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저울에 나를 달아보았다. '41.' 와! 나는 신이 났다. 내 몸을 내가 '통제'할 수 있다니! 적어도 내 몸만큼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니! 남들은 이 몸무게를 얻으려고 별짓을 다하는데! 나는 혼자서 해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정신을 차려보니 응급의료센터에 누워있었다. 저혈압으로 쓰러졌다고 했다. 최고 80에 최저 40. 당시의 내 주식은 연양갱이나 그래놀라바 한 개, 물 조금, 저염 비스킷 몇 조각이 다였다(한 끼가 아니고 하루 세 끼 통틀어). 그걸 먹고 주어진 모든 일정을 소화했다. 일어나 학교에 가고, 사람들을 만나고, 인턴십을 하고, 시험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고, 취미 생활을 했다. 내 몸을 보며 걱정해주는 사람이 아주 없진 않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내 행동 자체를 비난하지는 않았다. 여대생이라면 으레 '관리'를 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본능'에서 나온 행동인데 뭐 어떻냐는 것이다.
나는 '본능'이 나를 죽이기 전에 다행스럽게도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내 정신을 붙들어준 건 내 안의 수많은 물음표들이었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 하루에도 수십번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묻다 지쳐 찾아간 곳이 정신과였고, 그곳에서 식이장애 진단을 받은 뒤에야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딱 두 마디만 하셨다. 먼저 첫 마디. "소란화씨가 통제하려고 하는 건 사실은 통제될 수 없는 거에요. 인생이 원래 그래요.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냉정하지만 분명 현실에 뿌리를 둔 말이었다. 삶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거다. 그냥 그런 거다. 의사 선생님의 다른 한 마디는 돌이켜보면 실로 엄청난 '예지'를 담고 있었다. "누가 알아요, 내후년에는 통넓은 바지가 유행할지. 그럼 다들 또 거기에 맞춰 가겠지." 그는 과연 용(?)했다.
살을 빼려는 모든 사람이 다 식이장애에 걸리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건강상의 이유로 반드시 살을 빼야만 하는 경우도 왕왕 있음을 잘 안다. 하지만 살을 빼는 건 기본적으로 통제의 영역이다. 내 몸을 통제한다는 건 생각보다 위험을 동반하는 일이다. 통제의 컨트롤타워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뼈와 살로만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다. '정신'은 우리들을 이루는 큰 부분이다. 끊임없는 통제는 정신을 지치게 한다. 그깟 피자 한 조각 참는 것, 저녁 한 끼 굶는 것, 쉬는 대신 나가서 1시간 운동장 뛰다 오는 게 무슨 지치는 일이냐고 생각할 지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지나온 사람으로서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통제는 억압이고, 억압된 것은 반드시 '회귀'한다. 다름 아닌 '요요'가 그것이다.
나를 포함해, 살을 뺐던 사람들 대부분은 뺀 몸무게만큼 다시 찌거나 혹은 그 이상 찌게 되는 '요요'를 경험한다. 다이어트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는 프로젝트임을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증명해왔다. 나는 41키로에서 과체중까지 갔다가 다시 정상체중, 그러니까 원래 나의 체중으로 돌아왔다. 그간 내가 한 거라곤 그냥 원래 먹던대로, 삼시세끼 꼬박 꼬박 챙겨먹으며 운동은 내킬 때만 하고 평범한 일상을 살기, 그게 다였다. 본래 사람의 신체는 말랐건 뚱뚱하건 그 자신만의 '정상체중'을 유지하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그러니까 남들에게 '뚱뚱'해 보이는 몸이 그 자신에게는 지극히 '정상'인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이 말하는 이상적인 숫자, 소위 '160cm에 42kg'은 수많은 '정상체중'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엄밀히 말하면 160에 42는 저체중에 속한다).
살을 빼는 건 심하게 말해 도박 같아서, 한번 시작하면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다. 후유증도 크다. 나는 아직도 내 나이 또래들이 먹는 만큼 먹지 못한다. 위가 줄어들어서 그렇다. 조금만 심하게 먹어도 초죽음 되도록 다 토하거나, 심각한 장염 증상을 보인다. 사람이 먹고 싶은 걸 양껏 먹지 못하면 각종 부작용이 생긴다. 우울해지고, 성격이 예민해지고, 비정상적인 식탐을 갖게 된다. 먹기. 삶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일이다. 아직도 살을 빼고 싶다면, 너는 그렇고 그랬다지만 나는 괜찮을 거야, 라고 생각한다면, 이 말을 다시 한 번 해야겠다. 억압된 것은 반드시 회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