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소란화

나도 소위 맘카페라는 것에 가입을 했다. 지역 맘카페인지라, 내가 사는 동네의 소소한 일들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가는 모습을 보는 게 생각보다 재미있다. 그 와중에 종종 눈에 띄는 글들이 있었다. 영유. 레테. 영어 어린이집. 학습지. 모두 어린 아이들에게 영어를 교육하는 일과 관련된 내용이다. 말로만 들었던 영어유치원, 유아 언어 학습에 대해 실제로 '선배님들'이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 궁금한 마음으로 게시물들을 열심히 읽어보았다. 그러다 어느덧 내린 이상한 결론: 초등학교 저학년때부터 영어를 시작하는 것도 이미 많이 늦는 거다(?)


내가 영어를 시작한 나이는 초등학교 3학년. 학교에서 영어 과목을 가르쳐주던 시기와 영어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시기가 일치했다. 선행이라면 집에서 학습지로 알파벳을 공부한 것이 전부. 그러나 영어를 시작했다고, 진짜로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시기는 다름 아닌 내 나이 스물 한살 무렵. 교환학생으로 건너간 미국에서였다. 나는 세상에 한국 영어와 '진짜' 영어가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아차렸다. 한국 영어가 잘 정제된 탄수화물같은 매끄럽고 안전한 느낌의 영어였다면, '진짜' 영어는 날것 그대로의 통곡물을 억지로 씹어 삼켜야만 하는 기분이었다. 그 누구도 영상이나 학원 교재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친절하게 속도를 낮추어 말하는 이가 없었다. 동부 영어, 서부 영어, 남부 영어... 같은 나라 안에서도 억양과 속도, 단어 선택은 또 어찌나 그렇게들 다른지(경상도와 전라도, 제주도와 충청도, 강원도와 경기도... 방언의 존재는 당연한 것임에도 영어가 그러리라고 상상하지 못할 건 또 뭐람). 현지 친구에게서 대뜸 "Wanna grab some coffee tomorrow?"라는 말을 듣고 뇌가 일시정지했던 경험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한국식 영어에 익숙한 내게 coffee는 당연 drink와 짝꿍이었지만, 현지인 친구는 grab이라는 단어도 coffee와 만만찮게 잘 어울린다는 걸 알려주면서 이렇게 덧붙였더랬다: 소란화, are you okay...?(당시 교환학생으로 가있던 학교에서 나는 무려 셰익스피어 수업을 신청해 듣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네 살 때부터 영어유치원을 다녔더라면, 부지런히 파닉스 과외를 받고 레테를 보고 영단어를 1200개씩 외우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더라면, wanna grab some coffee라는 말에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더 좋은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을까?글로벌 경쟁력을 제대로 갖춘 시대인재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grab도 모르면서 셰익스피어를 듣는다고 설쳐대는 꼴사나운 아시아 여학생으로 보이지 않아도 되었을까?


영어를 원어민처럼 발음하는 나는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었을까?


그 누구도 알 수 없고 맘카페에서 답해줄 수도 없는 문제이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구에게나 때가 있는데, 대신 그 '때'는 사람마다 다르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건 엄마가 정해주는 건 아닌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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