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에게 재접근기가 왔다. 재접근기란 엄마에게서 이제 막 독립을 경험한 아기가 성취감, 즐거움과 동시에 분리에 대한 크나큰 공포심과 두려움으로 인해 감정적 혼란에 빠지는 시기를 일컬으며, 이 시기 아기들은 이유없는 강성울음과 떼로 악명이 높다. 대중적인 표현으로는 마의 18개월이라고들 한다.
이유없는 강성울음과 떼쯤이야 우유주고 간식주고 티비 보여주면 되는거 아니겠냐고 하겠지만 우유 간식 티비 포함 이 세상 모든게 다 싫은 것이 재접근기의 강력한 특징이다. 다시 말해, 아기는 울고 싶을때까지 운다. 브레이크도 악셀도, 아기가 잡고 있다. 엄마와 아빠는 한없이 무력해진다. 최근 태어나 가장 극심한 울음으로 탈진 직전까지 갈 것 같았던 아기 앞에서 나는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그만해! 내 목소리가 얼마나 크고 무서웠는지는 부처님 하느님 공자님만 아실 일이다. 아기는 히끅히끅 울음을 속으로 집어 삼키며 있는 힘을 다해 눈물을 참으려 했다. 하지만 안되는걸. 이내 다시 울음이 터져 나오고, 덩달아 내 울음도 함께 터져나왔다. 그렇게 18개월 아기 옆에서 자그마치 396개월, 못난 어른 아기가 함께 울보가 되고 말았다.
조금 거리를 두고 돌아보니, 나는 아기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좋아하지만, 아기의 문제와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은 매우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기의힘듦과 불편함을 당장에 어떻게든 해결해주지 않으면 정말로 어떻게 되어버릴 것처럼 갖은 호들갑을 떨며, 우는 아기 입에 우유와 과일 음료를 억지로 가져다대고, 발버둥치는 애를 껴안고 어화둥둥 거리고, 뽀로로를 틀고, 이러고 저러고 동동 구르다 결국 훈육과 학대 그 어디 사이엔가 애매하게 자리한 태도로 아기에게 기어이 겁을 주고야 마는 결과만 반복하고 있었다. 사실 아기는 그냥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걸텐데: 엄마. 나 지금 기분이 너무 나빠. 마음이 안좋아. 불편해. 근데 그냥 그렇다는 걸 엄마가 알았음 좋겠어. 내가 기분 나빠서 울고불고 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어줘. 그거면 돼. 내가 힘들어할 때, 예쁜 짓 안하고 애교 안부리고 다른 사람들이 다 나를 버거워할 때, 엄마만은 그저 내 옆에 있어줘. 우유 필요 없어. 뽀로로 싫어. 엄마만 있으면 돼. 이렇게 울고 나서도 세상이 여전히 괜찮은 곳이라는 걸 알려줘. 엄마는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는 걸, 내가 힘들 때 도망치지 않는다는 걸 알려줘.
물론 이 396개월 어른 아기는 그렇게 성숙하고 믿음직스런 부모는 못되어서, 자기보다 한참 작은 아기에게 소리나 질러대고 같이 울어버리고야 말았지만, 아기의 재접근기를 계기로 자기 자신의 성인으로서의 재접근기를 새삼 다시 경험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힘이 들고 슬프고 우울하고 그 벅찬 감정을 나도 어찌할지 모를때 누군가 그저 말없이 곁에 있어만 주어도, 그 시간을 함께 견디어 주기만 해도 결국 다시 일어설 힘이 생기던 과거의 소중한 기억들을 잘 살려내어 다시 이 치열한 육아의 현장으로 소환해볼 예정이다. 아이를 낳아 기를 때,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다시 살게 된다던 선배들의 말씀은 과연 진실이었음을 톡톡히 깨닫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