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권하는 사회에 고함

둘째 is none of your business

by 소란화

내 주변에 아이가 없는 딩크 지인이 있다.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종종 그가 참 부러웠다. 그의 여유롭고 차분한 일상이, 한때 나 또한 당연스레 영위하던 일상이 부럽게 느껴졌다. 미디어에서 아이가 없는 것, 아이를 포기한 삶에 대해 결핍과 이기심 따위의 부정적인 말로 깎아내리는 것을 보고 나는 생각했다. 실은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버거운 일인지 알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는 이들을 질투해서 저러는 거라고. 아이 있음을 '성숙'이라는 이름으로 치장하면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건 성숙도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오히려 성숙도는 아이를 낳아 기르는 최소 구비 요건이다. 성숙해야만, 비로소 아이를 낳고 기를 자격을 갖춘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문화는 아이가 생기면 저절로 성숙해지리라 단정한다.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를 제대로 기르기는커녕 학대하다 죽음으로까지 내모는 부모는 대체 무엇인가.


부끄럽지만 나는 별 생각없이 아이를 갖고, 또 낳았다. 임신출산육아는 동물의 영역이라는 생각이었다. 밥 먹고 잠 자고 배변하는, 딱 거기까지인 '대자연'의 영역. 그래서 그냥 '순리'에 맡기면 저절로 다 되는 줄 알았다. 아이 기르는 나, 모성애가 뿜어져 나오는 나 같은 건 아주 쉽게 어디에선가 짠, 하고 '등장'하는 건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아 나는 무언가 잘못 되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임신출산육아는 동물의 영역이 아니었다. 문화의 영역이고, 사회의 영역이었다. 어느 하나 '당연'하거나 '자연'스러운 건 없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은 국영수사과처럼 공부하고 훈련해야만 하는, '교육'이 필요한 분야였다. 엄마와 여자들이 하는 일이라서 은연중에 업신여겼던 이 일, 계절이 오고 가고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절대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물이 역류하듯 고통스러움을 수반하는 일이었다. 지금껏 내가 알고 있던 당연한 것들을 360도 뒤집는 일이었다. 내가 나, 라고 믿고 있던 '(나름)우아하고' '(나름)교양있던' 존재가 송두리째 뒤집히는 일이었다. 젖 달라 보채는 아이 앞에서 힘들다며 울어버리는 일이었다. 겨우 설사한 것 하나 가지고 또 언제 치우냐며 비명을 내지르는 일이었다. 새벽토록 자지 않는 아이의 등을 쓰다듬다가 그 쓰다듬이 별안간 조바심 가득한 투닥거림으로 미세하게 바뀌어 버리는 일이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고 아무나 해서도 안되는 일이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마음으로 임신출산육아를 거친 대가는 혹독했다.


하지만 아이가 주는 기쁨은요? 그런 건 사실 구태여 얘기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아이 가진 부모 마음이 다 비슷하겠지만 아이를 보면 느껴지는 감정은 말로 쉽게 표현하기 어려운 것 같다. 기쁨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얕다. 아이가 주는 건 그저 삶이다. 삶 그 자체다. 아이는 부모의 전부가 된다. 인생의 컨트롤 타워에 들어앉아 버리는 것이다. 거기서 부모에게 온갖 것들, 기쁨도 주고 슬픔도 주고 분노도 주고 반성과 성찰도 준다. 한마디로 병 주고 약 주는 존재, 그게 아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건 곧 인생의 전부가 된다. 절대 일부일 수가 없다. 사이드 프로젝트(side project)나 부업 정도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남들 다 하는 임출육이라는 말은 정말로 잘못된 것 같다. 남들 다 한다고 섣불리 하게 되면 애꿎은 그 남들을 탓하게 된다(왜 아무도 나한테 이렇게 힘든 거라고 말 안해줬어!).

이 글을 보고 혹여 아이 계획을 세우다가 돌연 브레이크가 걸렸다거나 망설임이 생겼다면 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일단 질러! 낳고 생각해! 어떻게든 되! 따위의 발상은 임신출산육아에 맞지 않는다. 아이 엄마 주제에 나는 괘씸하게도(복지부에서 나를 잡아들이려 할지도 모른다) 주변 미혼 친구들에게 자녀없는 삶을 적극 권한다. 그녀들이 나처럼 당혹스럽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조금이라도 더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선택을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지금도 충분히 빛나는 그녀들의 1인분 인생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오지랖에 쓸데없는 참견 내지는 '또래 꼰대'같은 마인드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이 낳고 기르는 일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이야기하는 사회에 반대한다. 임신출산육아에 대해 아무것도 똑바로 가르치지 않은 주제에 '적령기'가 왔으니 번식하고 양육하라며 동물 취급하는 사회에 반대한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아기조차 제대로 보호하지 못해 쩔쩔매는 우매한 사회에 반대한다. 아동학대 가해부모 밑에서 자라나, 더 이상의 학대가 대물림 되지 않는 가정을 만들고자 고군분투하는 사람으로서 아이 권하는 사회에 반대한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진정한 '선택'이 되려면, 우리 사회는 그것을 위한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사회 구성원들을 '돌봄인caregiver'으로 기르는 일이 필요하다. 학령기에 기초학력을 다지는 일만큼이나, 누군가를 돌보는 법을 아는 일이 사회 전반적으로 우선시되어야 한다. 결국 누구나 살면서 계속 '돌봄'을 실천하게 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돌보고, 가족을 돌보고, 반려생물을 돌보고, 이웃과 커뮤니티를 돌본다. 어떻게 해야 잘 돌볼 수 있는지, 특히 어린 아기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 충분히 배울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15세에 일찌감치 아기 똥기저귀 가는 법, 분유를 타고 아기 트름시키는 법을 배운 소녀와 소년이, 35세가 넘어 유튜브로 아기 기저귀 가는 법을 검색하는 어른보다 사람과 삶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모두의 경험이 나의 경험과 같지 않을 것이다. 부모가 100명이면 100가지의 양육경험이 있을 것이므로. 아이로 인해 얻는 깊은 행복을 지나치게 축소해서, 형편없이 납작하게 만들어버리는 글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오로지 내 경험에 입각해서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게다가 사회는 아직도 아이를 갖는 문제에 대해 다소 '철없는' 소리만 반복하고 있다. 인구 수, 저출생쇼크, 경제이슈, 고령화, 국력저하 같은 건 아이를 낳아 기르는 매일의 경험과 사실상 거의 무관한 일이다. 아이는 저절로 큰다는 착각과 무지함, 수많은 돌봄의 순간들을 '집안일' '허드렛일'로 격하하고 아무런 실질적 가치(aka 돈)로도 인정하지 않는 태도, 학대가 일어나면 별다른 시스템적 개혁없이 가해부모를 처벌하는 것으로 끝나고 마는 무력한 법과 행정. 이런 가운데 '아이 낳지 않음'은 철 덜 든 사회에 대한 철 든 사람들의 진지하고 '성숙한' 반격이 아닐까.


추신: 그러니까 이제 둘째 이야기 그만 해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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