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합지졸 부엌

by 소란화

시어머니의 부엌에는 살림살이가 아주 그득하다. 유튜브에서 보는 완벽한 부엌, 취향과 스타일과 감각이 살아숨쉬는 부엌이 아니라, 그냥 일반 살림집 부엌이다. 구태여 비유하자면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루시퍼의 부엌같달까. 청소는 잘 되어 있지만, 단정함이나 미니멀리즘과는 거리가 멀다. 다 쓴 일회용품도 어머니의 부엌에서는 일회용이라는 수식어를 벗는다. 어머니 손에 들어가면 다다다다회용이 된다. 수저함에는 분홍색 베스킨라빈스 스푼이 한것 꽂혀있다. 자잘한 물건들이 여기저기 많고, 항시 끓고 있는 주전자와, 주방 가득 풍기는 4년 묵은 집 된장 냄새, 채 닦이지 못하고 그대로 식탁 귀퉁이서 굳어버린 김치 국물 자국,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 어머니의 주방은 살림하는 사람의 주방이다. 어수선하고, 바쁘고, 복잡하고, 풍요롭다.


명절마다 이 부엌을 볼 수 있어서 좋다. 어머니의 칼질을 관찰할 때마다 내가 얼마나 살림에 재능이 없는가를 실감한다. 살림은 순발력이다. 동시다발적으로 다양한 식구들의 다양한 욕구들을 신속하게 채워주어야 한다. 어머니의 부엌이 항상 시끄럽고, 오합지졸에다가, 복작복작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아름답고 우아하고 정갈하게 살림살이를 정돈하고 있을 여유 따위 없다. 어머니의 주방에는 조회수나 인기가 아니라 식구들의 생활과 생존이 달려있다. 그런 '실전형' 부엌에서 삶을 본다. 어머니의 일상이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현실을 본다. 인생은 밥에서 시작해 밥으로 끝난다는 실없는 생각도 해본다.


살림 유튜버들의 콘텐츠를 애청하고 그들이 펴낸 살림팁 서적을 탐독한다고 해서 내 살림력이 늘어나는가, 하면 전혀 아니다. 나의 살림은 나의 것. 어머니가 말씀 하신다. 너대로 해. 네 살림은 네 것이니까. 당신 살림은 당신 것이니 설거지도 다 당신 몫이라며 여간해서는 며느리 손에 물 안 묻히려 하시는 우리 어머니. 나는 우리 어머니 부엌에서 배려를 본다. 사랑을 느낀다. 이곳 오합지졸 부엌, 오래오래 머물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긍정적으로 포기해볼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