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대의 플렉스는 바로 대학원 논문을 포기한 것이다. 그 아까운 걸 포기하냐고, 그것도 자랑이냐고 비난하는 말들이 많았지만 나는 마음이 편안하다. 후회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후회는 많다. 논문을 쓴다는 건 오롯이 나 자신의 힘으로 리서치와 정리, 이론 구축과 가설 검증, 그리고 의미 만들기를 해내는 일이니만큼, 아주 큰 가치가 있는 일이다. 단순히 학위를 받기 위해 거쳐가는 심심한 과정이 아니란 소리다. 그래서 나는 '제대로' 논문을 쓰고 정정당당히 학위를 받은 사람들, 학생들을 가르치고 행정일을 도맡는 바쁜 와중에도 부지런히 연구를 거듭해 자신의 학문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연구자들이 너무 부럽고 그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그럼에도 내가 이 가치있는 일을 입구에서부터 놓아버린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바로 내게 즐거움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즐거움이란 내게 다음과 같다. 첫째, 몸과 마음이 모두 반응할 것. 나를 가슴 뛰게 하는 흥분과 긴장감이 있어야 한다. 아침 일찍 나를 설렘으로 깨울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자유로울 것. 나의 개성과 상상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만큼 거대한 레인지(range)를 갖고 있어야 한다. 셋째, 너그러울 것. 나의 인간적인 한계를 포용하고 다독일 수 있는, 그런 편안한 판(field)이어야 한다. 논문 과정은 그렇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들고 파야하는 주제들이 진부해지기 시작했다. 종이 위에 뭔가를 계속 쓰기는 쓰는데 대체 내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가진 특수성이 보탬이 되기는 커녕 걸림돌이 된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설상가상으로 내가 속한 학과는 그 분위기상 인간적인 실수보다 차라리 비인간적인 완벽성을 추구하는(학문이라는 것이 대체로 그렇긴 하지만) 경향이었기 때문에 논문을 추진하는 내내 소외된 느낌을 벗을 수가 없었다.
말이야 쉽지, 논문을 놓기까지 정말 오래걸렸다.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뛴 날들이 2년, 3년을 넘어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시간만 흐르고 변한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벽에 부딪힌 것 같았고, 언제나 그 벽을 뛰어넘으려고만 했다. 하지만 벽을 마주했을 때, 얼마든지 깔끔히 '뒤돌아서서' 다른 방향으로 가도 된다는 걸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처음엔 이런 선택이 낯설기만 하고 죄책감도 심했다. '대학원 쓰레기'라는 말이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취직도 않고 하릴없이 대학원에서 시간만 축내는 나이먹은 밥충이들을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나를 그렇게 볼 사람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되자, 우습게도 되려 용감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더 오래도록 공부할 수 있었던 건 정말로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반드시 학문이 아니더라도 그 어떤 일을 해서든 나의 미래를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면, 누가 날 '대학원 쓰레기'로 부르든 '고학력 식충이'로 부르든 그런 건 전혀 신경쓸 일이 아닌 것이다.
내가 논문을 쓰지 않겠다고 말했을 때, 단 한 사람, 내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어, 괜찮네, 그것도." '잘했네'도 아니고 '야 무슨 그런 미련한 선택을'도 아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마디, '괜찮네.' 이 한 마디가 그간의 내 모든 졸렬하고 지긋지긋한 고민들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고 하면 역시 좀 과장이겠지만, 그럼에도 제법 큰 감동이었다고는 할 수 있겠다. '나 하나쯤' 논문 쓰지 않았다고 해서 이 세계에 벼락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나 하나쯤' 다른 길로 가겠다고 결심했다 해서 갑자기 좀비 아포칼립스가 시작되는 것도 아니다(그랬다면 목숨을 걸고 어떻게든 썼겠지?). '그것도 괜찮다'는 담백한 한 마디. 개개인의 인생사에 생각보다 무심한 세상에서, 나만의 즐거움을 쫓아 얼마든지 '자체 플렉스'하며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뜻밖의 자유를 선물받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