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출근하기 싫어하는 직장인들에 대한 뉴스를 보았다. 코로나 시기 재택근무에 익숙해지면서, 현장 출근의 불필요함을 토로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집에서 일하면 통근 버스나 전철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자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기름값도 줄일 수 있다. 아이가 있는 어머니나 아버지는 비교적 여유롭게 어린이집 등원 시간을 맞출 수 있다. 점심시간에는 굳이 돈을 주고 나가서 사 먹지 않아도 되니 외식비도 굳는다. 구구절절 다 맞는 이야기였다. 그러다 문득, 아침 6시면 서울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집앞 정류장에 서 있던 예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직 컴컴한 하늘에 약간의 붉은빛이 서서히 번져 보일 때쯤 버스에 오르면 항상 비슷한 기분이었다. 갑갑함. 여름이건 겨울이건 마찬가지였다. 차내 공기와는 상관이 없었다. 그냥 답답했다. 실제로 너무도 갑갑한 나머지, 적어도 서너 번은 앉은 자리에서 그만 정신을 놓을 뻔하기도 했다(훗날 돌이켜보니, 약간의 공황과 폐쇄공포, 아침을 먹지 않아 울렁거리는 빈속이 환상의 콜라보를 일으킨 것이었다). 그 뭉근한 불쾌감 속에서 좁디좁은 자리에 내 엉덩이와 커다란 짐들을 어떻게든 구겨 넣으면, 버스는 기세 좋게 큰 방귀를 한번 뀌고는 어김없이 서울로의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도, 대각선으로 앉은 사람도 표정을 보면 매한가지였다. 딱히 기분이 상쾌해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 눈을 뜨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다들 이리저리 헤드뱅잉을 하며 정신없이 자고 있었으니까. 헬로, 피곤에 찌든 대한민국.
아침 버스를 타는 사람의 70퍼센트 가까이가 머리가 살짝 벗겨지려고 하는 중년 남성들이었다. 내가 늘 같은 버스만 이용했기 때문에 다른 버스의 상황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내가 탄 버스에 한해서는 그랬다. 나는 일하러 가는 아버지 모습을 본 경험이 별로 없어서, 매일같이 같은 시간에 같은 버스에 올라 비슷한 자리에 앉아 비슷한 각도로 졸고 있는 그들을 보며 경이로움에 사로잡히곤 했다(나도 그랬으면서...!). 다양한 생각이 떠올랐다. 신자유주의 사회의 피곤한 인간군상. 아직까지는 압도적으로 많은 남성 생계부양자의 수. 남편이자 가장이자 아버지이자 직장인이자 국가경제의 핵심을 이루는 이 남자들. 정신을 잃을 정도로 갑갑한 와중에도 별의별 생각을 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나를 강하게 사로잡은 생각이 하나 있었다. 이 사람들은 대체 왜 이런 힘든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몇십 년씩이나 이어갈 수 있는 걸까?
시건방진 오지랖이란 건 안다. 나는 그들이 얼마나, 어떻게 힘든지도 잘 모른다(전혀 힘들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들 중 일부는 ‘전형적인’ 4인 가족의 가장이 아니라 혼자 사는 사람일 수도, 부모님과 사는 사람일 수도, 아이 없이 부인과 맞벌이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꼭두새벽 일어나 씻고 밥 먹고(대부분 이 단계를 건너뛴다고 한다) 주섬주섬 필요한 걸 챙겨서 버스를 타기 위해 정거장으로 날아가는 일상을 1년 365일 이어간다는 것이, 어쨌든 애초에 쉬운 일은 아니지 않나. 물론 아침 일찍 어린이집과 학교로 향하는 아이들도 자기들만의 고충이 있겠지만, 새벽을 여는 소리란 무엇보다 가장의 기침 소리, 커피 내리는 소리, 화장실 문 여닫는 소리, 현관에서 바삐 구두 고쳐 신는 소리가 아닐까. 그 가장이 남자든 여자든 간에, 1인 가구의 나홀로 생계부양자이든 6인 가구의 책임자이든 간에, 그들의 어깨에 지워진 책임의 무게란 아무리 가볍게 생각하려 해도 전혀 가볍지 않은 것이다.
그래. 어쩌면 그 무게야말로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버스에 오르게 하는 요인이 아닐까. ‘돈 벌어야지’라는 담담한 말 뒤에, ‘계속해서 살아보자’라는 불굴의 의지가 든든히 버티고 있다. 제아무리 갑갑한 버스 안이라 할지라도, 7시를 넘기면 아침 햇살이 어김없이 한가득 쏟아져 들어온다. 나 역시 그 햇살이 좋아 아침 버스를 한사코 놓치지 않으려 했다는 걸, 더 이상 버스에 오를 일이 없게 된 후에야 깨닫고 말았다.
머잖은 미래 사회에 재택이 주요한 근무 형태로 자리 잡으면, 통근 버스의 추억도 스리슬쩍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딱히 아쉬울 건 없다. 누구든 충분히 자고, 효율적으로 일하고, 가족과의 시간을 늘리고, 가정에서의 돌봄과 가사노동을 더 살뜰히 챙길 권리가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기억하고 싶다. 곳곳에서 나지막이 울려대던 코고는 소리. 천신만고 끝에 서울 시내로 들어선 버스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쾌감과 안도감. 버스에 오르고 내리는 동안 수도 없이 혼자 속삭인, 긍정 가득한 자기 암시들. ‘오늘도 잘하자’, ‘쫄지마’, ‘넌 할 수 있어’, ‘저녁엔 뭘 해먹어야 맛있을까(?)’ 등등. 그 소소한 아침의 순간들이 내겐 여전히 소중하고, 누군가에겐 현재진행형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