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수는 길한 숫자라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홀수가 싫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둘씩 짝을 지으면 하나가 꼭 남기 때문이다. 나는 늘, 그 마지막 '하나'였다.
초등학교 때 단짝 친구가 있었다. 우리 둘은 쌍쌍바처럼 어디든 함께였다. 그러다 학년이 바뀌어 새로운 친구 하나를 더 사귀게 되었고, 우리 셋은 곧 '쌍쌍바+1'이 되어 어디든 함께하게 되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점점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재미난 건 꼭 둘씩 짝지어야만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콘솔게임도, 간식먹기도, 하다못해 그네타기도 그랬다. 한 명이 타면, 다른 한 명이 밀어주는 게 정석이다. 그럼 나머지 하나는 옆에서 지켜보거나 혼자 타야만 하는 거다. 지금 돌이켜보면 '혼자 타는 게 뭐 어때' 싶지만, 어린 아이에겐 그처럼 서러운 일이 또 있었을까 싶다. 여하튼 나는 두 친구 사이에서 치열한 갈등 끝에 두고두고 후회할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새로 사귄 친구는 차마 잃기 싫어 그만 옛 친구를 버리고 만 것이다. 그 후 학창시절 내내 '홀수의 저주(!)'가 이어졌다.
첫 번째 저주는 '7', 중학교 때였다. 내가 속한 그룹은 무려 일곱 명이나 함께 몰려다녔다. 처음엔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지만, 친구들이 조금씩 '짝'을 짓기 시작하면서 운명처럼 한 명이 떨어져 나가게 되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 하나는 나였다. 두 번째 저주는 '5', 고등학교 때였다. 집단 내부의 집요한 정치(?)게임에 휘말려 그만 군중 속 외톨이 신세가 되고 말았다. 외부에서는 우리 무리를 완전무결한 5총사로 보았지만, 정작 그 안에서의 나는 끈 떨어진 연 마냥 비참했다. 이런 상황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은 바로 수학여행이다. 버스에서 앉을 자리를 찾아 전전하는 것부터 기념사진을 찍을 때 겉돌고 마는 그 모든 순간마다 오롯이 삼켜야만 하는 절대적인 고독감. 마지막 저주는 다시 '5', 대학교 때였다. 원래부터 서로 극진했던 4명의 구성원들은 뒤늦게 합류한 내 존재가 자못 거슬렸던지, 한 명씩 나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느리지만 완고한 거리두기는 졸업날까지 이어졌고, 결국 4명 모두와 완전히 연락이 끊겨 버렸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그들은 여전히 서로에게 극진하다.
이런 복잡서글픈(?) 과거사 때문인지, 홀수라면 일종의 알러지 반응부터 보이게 되었다. 처음보는 사람도, 오랜 친구도, 심지어 가족과 친척도 예외는 없다. 개복치도 이런 개복치가 따로 없다. 어딜 가든 구성원이 홀수가 될 것 같다, 싶으면 먼저 자취를 감춰버린다. 하찮은 방어전략이지만 내 허약한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나름 자기위로와 변명을 일삼는다. 홀수 포비아는 강박이 되었다. 이대로라면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을 수가 없다.
나름대로 방법을 생각해냈다. 3명이 주인공인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 시청부터 시작해본다. 무슨 뚱딴지+히키코모리+오타쿠 같은 소리인가, 싶겠지만 이게 제법 도움이 된다. '삼발이' 구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관계를 원활히 이루어가는지 스크린을 통해 모의 학습을 한다. 최근까지 가장 큰 가르침(?)을 준 작품은 미국 애니메이션 <파워퍼프걸>이다. '블로썸' '버블' '버터컵' 세 명의 귀요미 꼬마들이 서로의 케미를 바탕으로 악당들을 물리친다. 꽤 오래된 작품이지만 어른이 되어 다시보니 감회가 남다르다. 각 캐릭터의 빛나는 개성이 모여 '삼발이'가 '파워퍼프걸'로 업그레이드 된 셈이다. 그러고 보면 2명보다 3명, 4명보다 5명이 주인공인 작품들이 즐비하다. 구도가 안정적이어서 그런걸까? 삼각형과 오각형은 분명 다이나믹한 매력이 있다. 더 많은 변수, 더 풍부한 이야기가 펼쳐질 확률이 높은 것이다.
그렇다고 가드를 완전히 내린 건 아니다. 난 아직도 홀수에 민감한 편이다. 나이 앞자리가 3인데도 이 모양이다. 하지만 오늘도 파워퍼프걸을 보며 웃는다. 홀수의 사랑스러움을 배워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