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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화 Feb 12. 2023

너랑 말하기 싫어

(지금은)

요즘 잘나간다는 챗GPT씨와 대화를 해보았다. 이 아이(?)가 정말로 의사변호사판사검사회계사교사상담사는 물론 작가까지 될 역량을 갖췄는지 알아보고 싶다는 제법 진지한 호기심이 발동해서였다.


싱거웠다. 대화는 5분만에 종료되었다. 일단 챗GPT는 뉴진스를 모른다고 했다. 여기서부터 그의 지적 능력에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럼 시를 한 번 써보라고 했다. 시제를 던져주자 일말의 고민도 없이 일필휘지로 써내려갔다. 읽어보니 형편없었다. 화려하고 강한 단어들이 오합지졸로 모여있었다. 마치, 서로 아무런 상관도 없는 명품들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느낌이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옛 말씀이 새삼 떠올랐다. 결정적으로, 챗GPT와의 대화는 아무런 '맛'도 없었다. 누구와 대화를 하든, 우리는 맛을 느끼기 마련이다. 달달할 때도 있고, 톡하니 쏠 때도 있고, 심심할 때도 있고, 화끈할 때도 있고. 아마도 그건 대화 상대가 '자아'를 가졌기 때문일거다. 하나의 자아와 또 다른 자아 사이에서 핑퐁처럼 주고 받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개성'이다. 말그대로, 개인의 고유한 성질personality. 하지만 챗GPT는 개성이 없는 건지 개성이 없는 척하는 건지(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는 거짓말에 능숙하다고 한다) 대화 내내 시종일관 신비주의를 밀어 붙인다. "네 저는 인공지능이기 때문에 감정도 생각도 없습니다"는 챗GPT의 디폴트 멘트다. 시제를 던지면 시를 쓰고 코딩을 하라 하면 코딩을 한다지만, 그는 자아, 즉 자의식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주어진 명령을 수행할 뿐이다.


아무튼 다행이다. 일단 챗GPT가 계속 이렇게 멍청해(?)만 준다면 나로써는 이 아이가 변호사 시험을 합격하든 행정고시를 통과하든 알 바 아니다. 그런데 훗날 어느 나사 풀린 과학자의 어이없는 실수로 챗GPT가 순식간에 자아를 갖기라도 한다면, 그때부터는 가드(!)를 좀 올려야 할 것 같다. 자의식을 갖고, 세상을 향해서 자신만의 독특한 자아와 개성을 펼쳐보이려 노력하는 모든 존재들은 하나같이 아름답다. 챗GPT도 우리들처럼 아름다워지길 원하게 된다면, 그때는 이 아이와 다시 대화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최소한 무슨 맛은 느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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