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에서 일하는 시간이 길다. 다소 예민한 성격인데다 조용한 걸 선호하다보니 소음과는 애초에 편한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그런데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하필 옆집, 아랫집, 윗집, 그 위에위에 있는 집, 심지어 옆동에 있는 집 소리까지 너무 잘 전해주는(!) 특성이 있어서 난감할 때가 많다. 카페 같은 곳에 가서 일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커피값이 밥값이 된 지가 오래다. 꾹 참고 나름의 방법들로 생존을 도모해보지만 그때뿐이다. 그저 의자 끄는 소리, 청소기 돌리는 소리, 마늘 빻는 소리, 아이들이 쿵쿵거리며 뛰어다니는 소리, 강아지가 매섭게 짖는 소리라면 충분히 신경을 끌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주로 듣게 되는 소음은 공교롭게도 사람의 말소리다. 이 점이 나를 미치게 한다.
층간소음을 통해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사람들이 저마다 처절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이 그리도 서러운지 꺼이꺼이 우는 소리를 들었을 땐 설마, 싶었다. 영화촬영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온 단지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화를 토해내는 목소리를 들었을 땐 불이라도 난 건가 싶어 창문을 열고 킁킁거린 적도 있다. 부부싸움, 부모와 자녀싸움, 형제와 자매 싸움, 명절 날 다른 가족과의 싸움, 전화기에 대고 하는 싸움, 혼잣말로 하는 싸움(?), 강아지에게 거는 싸움 등 온갖 종류의 싸움들을 실시간으로 청취(!)하기를 약 1년 쯤 지나자, 각 세대의 가족 구성과 그들간 대략적인 관계양상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도가 터버렸다. 바이올린 현이 끊어질 때처럼 날카롭게 튕겨나가는 단어들 속에서, 대체 날마다 어떻게들 살아내고 있는걸까? 이러다 신경 쇠약이 되는 건 아닐까 진지하게 걱정도 되었지만 나는 고집스럽게 내 책상에 붙어서 버팅겼다. 내 이웃들의 지리멸렬하고 서글픈 말소리들은, 사실 내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기 때문일까.
건축에 꽤나 조예가 깊은 전문가들은 틈만 나면 한국의 아파트 문화를 비난하기 바쁘다. 그들은 '닭장같은 아파트'라고 내가 사는 공동주택을 멸시한다. 산업화의 산물, 하나같이 똑같은 공장형 건물, 회색빛 칙칙함, 개성 없음, 삶보다는 투자가 목적인 무미건조한 주거 공간 등등. 하지만 그들은 층간소음으로 가득한 아파트가 하나의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라는 걸 인지하지 못한다. 각자 철문을 꼭 닫고 들어가면 아무 것도 모를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 '철저히 구획된 개별 공간'은 환상에 불과할 뿐, 실제는 옆집 아저씨가 언제 소변을 누러 일어나는지까지도 알 수 있을만큼(절대 일부러 알려고 안 게 아니다, 나는 변태가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밀착'되어 있는 흥미로운 공간이 바로 아파트다. 미국에 있을 때 머물렀던 친구 집은 허허벌판에 외따로 떨어진 주택이었다. 총을 쏘아도 우리 말곤 아무도 들을 수 없는(다시 말해 총을 맞아도 누구도 구하러 오지 않을) 거대한 적막이 가득한 대지 위에서, 나는 우리 식구가 오밀조밀 모여 사는 조그만 공동주택을 떠올렸다. 내가 저혈압으로 쓰러져 실려가던 날, 앰뷸런스 소리에 놀란 아파트 주민들 몇몇이 가디건 한 장만 걸치고 집 밖에 나와 있었다. 아파트란 그런 곳이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끼리 소리로나마, 냄새로나마 서로 민감하게 맞닿아 있는 유기체적 공동 공간.
그러니까 더 조심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게 맞다. 자칫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 상대의 평화와 안정을 침해할 수 있으니까. '같이 사니 서로 배려 좀 하자'라는 말에 틀린 부분은 하나도 없다. 그렇지만 살아있는 존재들은 소리를 내기 마련이고, 그 소리는 내가 만들어내는 소리와 별반 다를 바 없으며, 그런 생동하는 소리들 속에서 살아가는 나는 어쩌면 허허벌판 위에서 그 모든 적막을 홀로 끌어안고 살아가는 누군가보다는 덜 외롭고 덜 위험한 게 아닐까 스스로 위안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