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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화 Nov 13. 2024

겨울

겨울은 춥다. 그래서인지 많은 것이 용서된다. 이불 밖으로 나오는 것은 위험해진다. 담요에 싸여 귤을 몇박스고 축내거나 달디단 핫초코를 하루에 다섯잔씩 마셔도 추우니까 모든 것이 용서된다.


내가 경험한 가장 극한의 추위는 영하 35도였다. 추워도 추워도 너무 추운, 러시아 근처의 어느 지방이었는데 그곳에서 나는 추위가 다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만져지는 것일수도 있음을 알았다. 손을 뻗어 공기를 만지면 그곳에 추위가 있었다. 사위가 컴컴하고 말로 표현할수조차 없는 차가움으로 가득했다. 그래서인지 많은 것들이 용서되었다. 이렇게나 추운데, 까짓것 그런 일쯤이야  다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숙소로 돌아와 어쩐지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던 건 우연이 아니었겠지.


이번 겨울은 따뜻할 예정이다. 갓 낳은 아가가 있으니 밖에 나갈 수 없(나가지 않아도 된)다. 젖을 먹은 후 가슴께에서 코를 골며 잠든 아가를 보면 마음이 따뜻하다못해 노곤노곤해진다. 그러나 추울때보다도 더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용서된다. 느리게 가도 좋다. 무언가를 바삐 해내지 않아도 좋다. 숨따라 고요히 오르내리는 아가의 동그란 배만 하루종일 바라보고 있어도 좋다. 그 작은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는 젖냄새 섞인 숨결만 맡고 있어도 좋다. 그러면서 내게 크고 작은 상해를 입혔던 그 모든 일들을 서서히 잊어가는 것은 더더욱 좋다.


자는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아가가 별안간 미소짓곤 한다. 엄마 자궁에서 하던 배냇짓이다. 이번 겨울은 모든 것이 용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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