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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생각이 다를 때

그것도 아주 많이 다를 때

by 소란화

단도직입적으로 이 글은 정치에 관한 이야기이니 불편한 분은 어서 빨리 피해주시길 당부드린다. 나는 정치적으로 무지하다. 학교에서 비싼 돈을 주고 페미니즘까지 공부한 나이지만 부끄럽게도 명확한 '스탠스'라는 것이 서 있지 않다. 그런 내게 '스탠스'가 확고한 사람들은 매우 존경스러워 보인다.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다는 건 정치의 영역에서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정 당이나 사람을 지지한다는 건 단순히 나는 파란색보다 빨간색이 더 좋아요, 라는 차원이 아니라 그 당과 사람이 지향하는 미래를 '신뢰'하고 그 뜻에 마음을 모으는 일인만큼, 어마어마한 심적 에너지가 들어가리란 생각이다. 그런 존경스러운 사람들 중에 바로 나의 엄마가 있다.


엄마는 현 정권 출범 후 줄곧 한 우물만 판 분이다. 엄마가 내 나이일 때는 무슨 당을, 어떤 정치인을 지지했는지 알 길이 없다. 그건 엄마와 그런 주제를 놓고 대화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엄마 자신이 부러 말씀하시지 않는 것도 같다. 여하튼 중요한 건 지금 엄마가 지지하는 당, 그리고 사람이다. 나는 엄마가 확신에 가득 차있는 모습에서 때론 위안을 얻기도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엄마가 확신한다는데, 잘못될 일이 뭐가 있을까? 그런데 뭔가 잘못되어간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어제 새벽 이후, 나는 엄마와 대화를 나누었고, 여전히 확신으로 가득 찬 엄마의 음성을 들었을 때 내 마음 속에는 위안이 아닌 공포가 조금씩 꿈틀대는 것이 느껴졌다. 엄마의 믿음은 흡사 종교적 차원으로까지 깊어진 것 같았다. 급격한 피로를 느끼고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마음 속 여파는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왜 내가 이토록 사랑하는 나의 엄마가 나와 이렇게까지 생각이 다를 수 있는 걸까?


사랑하는 가족이, 친구가, 직장 동료가, 연인이, 스승이, 이웃이, 나와 생각이 너무나도 다를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제발 '올바른' 쪽으로 마음을 돌리라고 최선을 다해 토론하고 또 설득해야만 할까? 아니면 아주 과감하게도 그들에 대한 사랑을 '철회'해야 할까? 속된 말로 '손절'을 칠까? 너는 아무래도 비정상인 것 같다고,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느냐고 비난을 퍼부어야 할까?


엄마와 대화하던 중에 별안간 가만히 있던 아기 입에서 '어우어' 소리가 나왔다. 요즘 들어 부쩍 옹알이가 많아진 아들내미의 깜찍한 지방방송이었다. 그러자 엄마가 말했다. "어우어!" 나도 말했다. "어우어!" 그리고 엄마와 나는 한동안 '어우어'를 연발하며 아기와 함께 웃고 떠들었다. 대화가 끝나고, 내 머릿속에는 손주를 따라하는 엄마의 귀여운 '어우어' 소리만이 남았다. 나는 손주를 이토록 귀애하는 나의 엄마가 무엇을 믿고 따르던, 그것을 무조건적으로 비난하고 깎아내릴 자격이 과연 내게 있는지 반문했다. 생각은 너무나도 다를 수 있지만, 우리 사이에 흐르고 있는 사랑은 다르지 않다. 변하지 않는다. 내게는 그 점이 중요하다고, 그리고 아마도 엄마에게도 그것이 가장 중요하리라고, 다른 건 몰라도 사랑에 대한 확신은 잃어버리지 말자고, 다짐하게 된 오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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