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이 다시 돌아왔다

예끼 이놈

by 소란화

대뜸 비속어라니, 죄송하다. 하지만 내겐 영 꼴의 ㄲ자도 보기 싫은 그 녀석이 도로 돌아와버렸지 뭔가. 다름 아닌 '식이장애'다.


시작은 임신 중기부터였다. 4개월차 접어들 무렵, 체중이 늘기 시작했다.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고도, 반가운 신체변화(여야했다). 그러나 나는 조금씩 불안해졌다. 병원에서는 원래도 저체중에 혈압까지 낮은 편이니, 살이 찌는 것이 여러모로 산모에게나 아기에게나 긍정적인 것이라고 주지시켰다. 하지만 큰 소용이 없었다. 나는 임신 중 15킬로까지도 찔 수 있다는 것에 바짝 긴장하고 말았다. 실제로 15킬로까지 찐 후 아가를 낳긴 했지만, 그 여정은 녹록치 않았다. 임신 중이므로 얼마든지 괜찮다는 마음(정상적인 마음) 반, 그래도 그렇게까지 불어나면 대체 어쩌자는 건지(비정상적인 마음) 반. 두 개의 나가 항상 내 안에서 다투었던 기간이었다.


출산 후, 말도 안되는 속도로 몸무게가 줄어들었다. 바람빠진 풍선처럼 나는 말라갔다. 모유수유와 육아 및 가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출산 전 무게보다 십여키로가 더 빠졌다. 나는 저체중 중에서도 위험군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만나면 아기가 아니라 내 안부부터 물어왔다. 아기 낳고 기르는게 그렇게 힘든 건지 몰랐다며 혀를 내둘렀다. 나는 모두가 이렇게 되는 건(!) 아니라고 대답하며, 내심 속으로 좋았다(매우 비정상적인 마음). 본래도 과도하게 살을 뺀 이력이 있는 나로서는, 별다른 노력없이도 이렇게 살이 절로 빠질 수 있다는 점이 오히려 즐겁게까지 느껴졌던 것이다. 나는 항상 마르고 싶었다. 본래도 마른 편이었지만 더더, 온라인에서들 얘기하는 '뼈말라'처럼, 가능한 한 얇게, 더 약하게, 나 자신을 납작하게 만들어버리고 싶었다. 이 병적이고 일면 잔인하기까지한 심리기제에는 대체 어떤 요인이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아이를 낳고 기르는 와중에까지 사라지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강해지는 이 식이장애 녀석의 힘은, 언제나 사그라들 수 있는 걸까.


아기는 그런 '뼈말라' 엄마의 모유만 먹었는데도 또래 아가들보다 키와 몸무게가 더 나간다. 포동포동, 부들부들한 뽀얀 팔다리와 두툼한 뱃살을 보고 있으면 그것이 싫다거나 빨리 빼줘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오히려 할 수 있는 한 더 많이 찌워주고 싶다. 내 젖으로, 그리고 내 손으로 정성스레 만든 내 밥으로. 아기는 이유식을 뜬 스푼이 코앞에 다가오면 할딱이는 작은 새처럼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입을 쫑긋거린다. 이렇게 맛있게, 복스럽게 자기 앞의 삶을 긍정하고 음미하는 아가 앞에서, 엄마는 뼈말라가 되고프다는 바람이나 품고 있단 사실이 오늘따라 기가 막힐 따름이다. 누구 말마따나, 아이를 낳다가 정신까지 낳아버린 것인지. 어딘가 배회중인 제정신을 어서 찾아와서 뼈뿐인 내 몸에 재빨리 붙여놓고 봐야겠단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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