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골목에 대해 써라

by 황현경

이십 대 초반 컴퓨터 자격증을 따고 약학 서적 만드는 출판사 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

부엌도 없는 방 한 칸을 보증금 15만 원에 월세로 얻어 살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만리동 고개 너머 버스 정거장에서 내리면 육교 밑이다.

그곳에서 계단을 내려가면 어두운 뒷골목이 나왔다.

골목을 돌고 돌아서 걸어가면 내가 살고 있는 집이 나왔다.

부엌도 따로 없고 방 한 칸에 연탄아궁이가 딸린 곳이다.

찬장도 방에 들여놓고 수납장으로 사용했다.

오밀조밀 판잣집에 작은 성냥갑 같던 집에는 손바닥만 한 유리창이 드문드문 있었고 그 빛을 가로등 삼아 집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날도 야근을 마치고 9시가 넘어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직장이 있던 청계천 끄트머리에서 버스를 타면 만리동까지 사오십 분이 걸렸다.

10시가 다 되어 만리동에 도착했고, 버스에서 내려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늦은 시간이라 인기척이 없어 서늘한 느낌이 드는 여름이었다.

원피스에 하이힐을 신고 또각또각 골목길로 들어섰다.

갑자기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오른쪽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누군가가 확 낚아챘다.

오른손으로 가방끈을 움켜쥐었다.

가방을 사이에 두고 밀고 당기기를 수차례 남자의 힘을 당해내지 못하고 끌려갔다. 남자는 가방으로 내 얼굴을 가격했다.

쓰고 있던 안경이 날아가고 나는 심한 충격에 쓰러져 버렸다.

“강도야! 도둑이야!” 소리 질렀지만, 남자는 순식간에 골목으로 사라져 버렸고, 주변에선 인기척이 없었다.

누구라도 한 사람만 나와서 도와줬더라면 가방을 빼앗기지 않았을 텐데.... 멍든 눈과 삔 다리를 절뚝거리며 집으로 갔다.

다음날 경찰서에 신고했지만, 경위서만 쓰고 나왔다.

경찰관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알아볼게요. 하면서 찾기 힘들 거라고 단정 지어 말했다.

그 가방 안에는 엄마가 만들어 준 도장과 통장, 사진, 주민증이 들어 있었다.

사진과 주민증, 통장은 새로 만들었다. 엄마가 준 도장은 가장 비슷한 것으로 다시 만들었지만, 엄마가 물려준 하나밖에 없던 도장 잃어버린 것이 가장 속상했다.

혹시 돈만 빼고 가방은 버려지지 않았을까? 동네를 돌며 찾아봤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소리를 좁은 골목이라 다 들렸을 텐데 무관심했던 골목 사람들에게 서운함을 느꼈다.

가방을 잃어버린 건 내 잘못이다.

아무 관련 없는 사람들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건 잘못된 생각이다.

훗날 누군가가 그랬다. 그런 상황에서는 강도야 소리 지를 게 아니라 불이야 소리 지르면 사람들이 나온다고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다.

그러게, 불이야 소리 지를 걸 그랬나? 후회스럽다.

지금도 뒷골목을 지날 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고 가방을 끌어안고 가는 버릇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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