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몰고 해안도로 일주하기

by 황현경

나는 차가 없다. 운전면허증도 없다.

그래서 차를 몰고 해안도로 달리기를 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려야 한다.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고 연수를 하고 가까운 데부터 조금씩 차를 모는 연습을 오랜 시간하고 그 후에야 해안도로 일주하기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누군가 운전하는 기차를 타고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는 기분을 낼 수는 있다.

동해로 가는 기차를 타고 가면 해안을 따라 기차가 달려간다.

그렇게 해안도로 일주하는 기분을 내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면 거대한 용이 꿈틀대며 기지개를 켜고 몸을 일으킨다.

서서히 발동이 걸리고 천천히 도시의 빌딩 사이 길을 헤치고 나아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청량리역을 지나 경희대 근처 생활용수가 쏟아져 나오는 하수구가 있는 뒷골목 하천을 스치듯 지나가고 공장과 너른 들판에 하얗게 비닐하우스가 드문드문 있는 곳을 볼 수 있다.

기차는 신이 나서 점점 속도를 올리고 두물머리 양평으로 향한다.

흐르는 넓은 강물을 가로지르며 멀리 보이는 푸른 숲과 가끔 날아가는 가끔 물 위를 떠도는 가끔 물가에서 고기를 잡는 새를 볼 수 있다.

자연의 모습과 몇몇 집들 사이로 기차는 휙휙 지나간다. 그리고 산이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

너른 들판이 보이고 그사이 작은 집들이 논과 밭 사이에 장난감 같은 늘어서 있다.

산을 목도리처럼 두르고 개천을 앞에 둔 마을도 보인다.

그러다 갑자기 훅하고 터널로 들어가면 어둠 속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에 화들짝 놀라기도 하고 그 모습에 빵 터지며 웃음이 새어 나온다.

기차에 오르기 전 구매한 과자를 냠냠 맥주도 한 캔 햄버거가 있으면 햄버거와 감자튀김과 맥주 한 모금.

여행지로 달려가는 느낌은 구름 타고 붕붕 날아가는 느낌이다.

여행 도착지에서 생길 일들보다 지금 기차 안에서 즐기는 입맛과 감정과 손의 느낌 마음의 느낌 눈으로 보는 상쾌한 느낌 하나하나 온몸으로 느껴본다.

일상생활에서 느껴보지 못하는 느낌. 여행을 떠날 때만 느껴지는 기분과 감정, 설렘.

이 모든 것들을 아껴먹는 단 과자를 먹듯 야금야금 느껴본다.

잠깐 달리다 보면 터널을 지나고 또 지나고 여러 개의 터널을 지나고 나면 창밖의 풍경이 조금씩 달라진다.

산과 산 사이 짧은 틈으로 초록빛 지평선이 보이는 듯하다가 갑자기 인사라도 하듯 푸르고 안개 가득한 수평선이 멀리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내 오감은 또 달라진다.

여행지 도착이 가까워졌다는 기대와 설렘과 기차여행이 끝나가는 아쉬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지만,

바다다! 바다! 바다를 보는 것은 즐겁고 신나는 일이다.

도착지에 대한 기대감은 잠시 미뤄두고 바다에 빠진다.

해안을 따라 밀려오는 파도. 부서지는 파도. 밀려가는 파도. 바다의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에 넋을 잃고 조용히 바라본다.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들리지 않는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어디선가 짭조름한 소금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끊임없이 바뀌는 바다를 보면서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를 보면서 해안도로를 일주하는 기분을 느껴본다.

그 시간만큼은 소리를 내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내 마음을 다해서 바다를 감상한다.

작은 움직임도 놓칠세라 바다의 섬세한 움직임에 감탄해 본다.

해안도로를 달리는 일은 나를 즐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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