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부엌

by 황현경

엄마는 부엌에서 늘 무언가를 만들어 내곤 하셨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나에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배고픈 길이었다. 개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끄트머리에는 국화빵 장수가 있었다. 양은 주전자에 담긴 밀가루 반죽을 기계에 주르륵 붓고 달콤한 팥을 똑똑 갈고리로 떼어 반죽에 던져 넣는 모습은 마법사의 손길처럼 신기해 보였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익어가던 국화빵. 기계를 휙휙 돌리고 갈고리로 능숙하게 말랑말랑한 국화빵을 뒤집으면 짙은 기름 냄새가 풍겨왔다. 먹고 싶은 마음에 입을 헤 벌리고 쳐다보다가 먼지 풀풀 나는 길을 따라 털레털레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왜 그리 멀게 느껴졌는지. 뱃속에서 텅 빈 위장이 꾸르륵 소리를 내면 발걸음은 점점 더 빨라졌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엄마가 부엌에서 도시락을 굽고 있는 것을 보았다.

“엄마 뭐 해?”

엄마는 대답 대신 비밀 가득한 미소만 지었다. 연탄불 위에 도시락을 바라보았다. 도시락은 살아있는 것처럼 치익치익 물방울을 떨구며 소리를 내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며 뚜껑이 들썩거렸다. 그리고 부엌을 감도는 달콤하고 구수한 냄새. 정오의 햇살이 설핏 넘어가며 도시락 위에 살짝 내려앉는 것을 보았다. 연탄불 위의 양은 도시락은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고 그 순간 황금빛으로 빛났다. 마법처럼 신기한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뚜껑이 열리면 무엇인가 신기한 것이 펑하고 튀어나올 것 같았다. 엄마는 조심스럽게 도시락을 꺼내었다. 뚜껑을 열자, 부엌에는 달콤한 냄새가 가득 차올랐다.

“우와 빵이다!”

나는 나무 도마 위에 올려진 빵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진짜 마법 같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구운 빵이라니. 동네에는 빵집도 없었고 기껏해야 국화빵. 제대로 된 빵을 구경조차 못 해본 내게 도시락 빵은 신기함 그 자체였다. 갓 구운 빵을 본 나는 먹고 싶어 안달복달 발을 동동 굴렀다. 엄마는 마법사처럼 칼로 한쪽을 베어 그릇에 담아 주었다. 따끈하고 폭신한 빵을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앗! 뜨거워!”

갓 구운 빵에서 나오는 증기에 입천장이 홀랑 까진 것 같았지만 입안에서 스르르 녹아내렸다. 부드럽고 달콤한 맛에 푹 빠져 버렸다. 밀가루 반죽을 도시락에 붓고 연탄불에 오래오래 구우면 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한 빵이 되었다. 밀가루에 당원 조금 이스트 조금 넣은 수수한 빵이었지만 한입 베어 문 순간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맛이었다. 그날 저녁 네 남매의 색다른 먹거리로 엄마가 생각해 낸 도시락 빵은 식구들의 따뜻한 한 끼 식사가 되었다.

주방에서 핫케이크를 구울 때면 오래전 따끈따끈 도시락 빵을 잘라 주시던 엄마의 손길이 떠오른다. 엄마의 부엌에서 마법처럼 도시락 빵을 굽듯 나도 아이들에게 줄 핫케이크를 만든다. 핫케이크 가루에 우유와 달걀을 조금씩 넣으면서 저어주면 걸쭉한 반죽이 된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약간 두르고 키친 타올로 가볍게 닦아낸다. 기름칠을 조금만 하고 약한 불에 구어야 한다. 불 조절이 중요하다. 불이 조금 세면 금세 타버리고 너무 약하면 잘 익지 않는다. 프라이팬 가운데에 반죽을 한 국자 떠서 동그라미를 만들고 뚜껑을 덮어둔다.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주문을 외우면서 가만히 지켜본다. 엄마가 구워주던 도시락 빵처럼 정성을 다해 구워야 맛있게 구워진다.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서 있다가 밀가루 반죽에 동글동글한 구멍이 뿅 뿅뿅 생기는 순간 뒤집개로 뒤집는다. 갈색의 동그란 테가 생기면 성공한 거다. 자칫 뒤집을 시간을 넘겨버리거나 불이 좀 세면 초콜릿 빛이 될 때가 있다.

“이건 초코케이크네 엄마가 먹어야지.”

조금 탄 것은 내가 먹고 잘 익고 예쁜 것은 아이들 접시에 놓아준다. 우리 엄마도 그랬다. 예쁘고 좋은 것 맛있는 것만 내게 주었다. 그땐 몰랐었는데 나도 아이를 키우다 보니 나도 엄마 같은 마음이 되어 있었다. 엄마가 만들어 준 음식들은 다 맛있고 따뜻하고 한입 먹으면 행복해지는 음식이었다. 그것은 엄마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마법 같은 사랑의 음식이었다. 아이들은 각자 접시에 포크와 나이프로 핫케이크를 잘라 버터나 딸기잼을 발라서 맛있게 먹는다. 그 모습을 보는 것처럼 달콤한 것은 없다. 마음 가득 몽글몽글한 행복이 피어오른다. 핫케이크 한쪽을 떼어먹어본다. 부드럽고 따뜻하다. 달콤한 딸기잼을 올리면 더 맛있다. 눈부시게 빛나던 도시락. 그리고 엄마의 신비한 미소. 처음 먹어본 갓 구운 빵은 엄마의 손길과 함께 한 장의 추억이 되었다. 오래전 내 곁을 떠나 좋은 곳으로 떠나신 엄마. 엄마가 만들어 주었던 음식은 오롯이 내 마음속에 남아 마법 같은 따뜻함을 오래오래 전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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